3년 전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미 대선 직후 열렸다. 평생공로상 수상자였던 메릴 스트립이 목이 잔뜩 쉰 채 단상에 올랐다. “할리우드는 다양한 인종과 국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이다. 이들을 다 쫓아내면 예술이 아니라 미식축구나 이종격투기만 남게 된다. 최고직에 오르려는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장애인을 흉내내며 놀리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사람을 괴롭히는데 권력을 쓰면 우리도 루저(loser)가 된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장애인 비하를 향해 대배우가 날린 일갈이다.

지난 추석 연휴는 우리나라도 한 가인(歌人) 덕분에 들썩였다. 나훈아 씨 얘기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지킨 것은 모두 여러분 같은 분들이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을 위해 출연료도 없이 온라인 콘서트를 연 그에게서 뜻밖의 말이 술술 나왔다. 특별한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정권 입장에선 딱히 기분 좋을 리 없는 발언이었다. 부산 야권에선 동구 초량동 출신인 그의 기념관을 세우자는 등 마케팅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90년대 초반까지 대중문화 수준이 한단계 위였던 일본이지만 진정한 예인에겐 점수가 후했다. 조용필은 노래의 왕으로, 나훈아는 노래의 신으로 불렀다. 나훈아가 우리로 치면 ‘아침마당’ 같은 일본 프로그램에 나가 독도나 식민지배 같은 예민한 주제를 하도 거침없이 말하는 바람에 교포는 물론이고 일본인들조차 “역시 상남자”라 칭송했다. 사실 사이다 발언은 그의 전매특허다. 2003년 평양 대신 서울을 택한 공연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노래가 ‘우리의 소원’이다. 느려터졌다”며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불렀다. 2005년 광복 60주년 콘서트에선 “아무 씰 데 없는 기념이다. 애초부터 없었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반전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존 바에즈나 제인 폰다처럼 우리나라도 언젠가부터 정치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일명 ‘개념 연예인’들이 생겼다. 이명박·박근혜의 보수정권을 거치며 그 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지 못하고 그저 튀는 말 몇마디로 유명세를 얻은 사람도 많다. 정권에 노골적으로 아부하거나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식이 아닌, 직업적 자부심 위에 불이익을 무릅쓰고 토해내는 응축의 언어가 훨씬 큰 울림을 준다. 나훈아에게 공감하고 환호하는 국민이 많다면 그건 그가 서민의 아픔을 위로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