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라는 말까지 동원해 사람 간 왕래 자제를 거듭 요청해 이번 추석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친인척 만남도 금지에 가까운 ‘국가 지침’에 따라 며느리들만 살 판 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모처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반, 추억 반을 버무린 대화를 곳곳에서 쏟아냈다.

추석 전날 KBS2TV 방송을 탄 가수 나훈아의 비대면(언택트) 공연이 연휴 내내 화제가 된 점은 이채롭다. 3부로 나눠 진행된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울림이 컸다. 현장 관객은 없었지만, TV 앞을 지킨 전국 각지의 안방 관객들은 열광했다. 다들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사랑’과 ‘인생’을 노래했다. 연후 막판 터진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 소식도 화제가 됐다.

바이러스가 만남의 본능을 위축시킨 이번 추석에도 사람 사는 세상의 변곡점이 되는 명절 특유의 전통은 이어졌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 오간 대화 내용의 공통 화제에 담긴 의미가 주목된다. 세상 흐름에 변화의 맥을 짚어내는 ‘터닝 포인트’를 파악할 수 있어서다. 연휴 전에 불거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중 휴가 특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이 ‘추석 민심 풍향계’의 주요 이슈였다.

“보좌관을 통해 아들 휴가를 연장한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던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등 이런저런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현직 장관의 ‘엄마 입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반면 고발장 접수 후 269일 만에 ‘모든 것이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린 검찰 수사가 만천하에 밝힌 병영생활규정(휴가 허가)에 대한 의견은 일관성을 보였다. 보좌관이 없는 엄마의 자녀는 물론 모든 사병도 이 규정 혜택을 받는 ‘공정 군대’ 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렸다.

북한 해상에서 표류하던 우리나라 공무원이 북측에 총살당하고 불태워졌다는 사건에는 실체적 진실보다는 정부 대응을 중심으로 ‘자진 월북’이나 ‘북한 통지문’ 문제 등을 놓고 제각각의 시각이 뒤엉켜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난무했다. 하지만 ‘국민 생명보다 남북 관계가 더 중요한가’라는 논란은 연휴 뒤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부산에서는 내년 4월 7일 치러질 부산시장 선거에 나설 후보에 대한 관전평이 주요 메뉴였다. 앞서 연휴 이전부터 부산시내 주요 도로마다 현수막이 나부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내건 ‘추석 인사’ 하나는 기본. 내년 선거 출마 예상자들이 넉넉한 표심을 원하면서 부산 전역에 뿌린 현수막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부산시정을 이끌어갈 시민 권력을 위임받을 인물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주자들과 주변 사람들의 여론 형성 움직임은 연휴 기간 활발했다. 일부는 자가 발전 형태로 인물 알리기에 주력했다. 내년 선거에 나설 여야 후보에 대한 윤곽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바로미터가 추석 민심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여당 후보는 두 김씨 중 한 명이 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집중됐다. 다양한 이력의 김씨와 당 안에서도 제 목소리를 낸다는 젊은 김씨가 후보로 나서야 하는 까닭은 갈렸다.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내년 선거보다는 후일의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여당의 복잡한 셈법이 읽혔다는 시선이 많다.

야당 후보는 다양한 성씨의 사람이 거론될 만큼 많았다. 부산시장 자리 탈환의 유리한 기회가 ‘현재까지는’ 조성된 야당에 후보가 넘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현직 국회의원은 물론 이름이 알려진 명망가와 1980년대 초 태어난 새 인물도 입에 오르내렸다. 가장 흔한 성인 김씨가 안 보여 의아했는데, 유력 대권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김씨가 결국 추석 민심 밥상에 올랐다.

추석 민심의 부산 포인트는 “후보는 많은데, 누가 임팩트 있는 인물인지 모르겠다”는 데 모아졌다는 평이다. 2022년 지방선거의 부산시장과 교육감 후보를 겨냥한 일부 인사는 이름 알리기를 예열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차기 부산시장 선거는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시민은 이제부터 난립하는 후보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이유가 없다. 국제도시 부산을 운영할 그릇이 안 되는 인물은 유권자 기억에서 하나둘씩 사라질 게다. 추석 밥상과 술상에 올랐던 여야 후보들은 하늘의 뜻(천심)을 냉정하게 판단할 때가 됐다. 주변의 극성 지지자와 자기 열정만으로 부산시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민심을 확인했다면 물러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것은 자유지만, 꿈을 접어야 할 시점을 놓치면 초라해진다. 퇴장 시점을 정확하게 짚고 그 나름으로 아름답게 물러난 그들에게 다른 열매를 딸 기회를 한 번쯤 안기는 것이 민심의 흐름이다.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