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지 없는 비행’(flight to nowhere). 얼핏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쏭달쏭하다. 속을 들여다보니 에어부산이 얼마 전 내놓은 상품 이름이다. 공항에서 이륙은 했지만 목적지에 착륙하지는 않고 원래 탑승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비행 일정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탑승객이 줄어 회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자구책으로 마련했다 한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에어부산 사례는 코로나19 때문에 바뀐 우리 사회 일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각자가 겪는 변화도 적지 않을 터다. 개인적으로는 추석 벌초를 건너뛰었다. 매년 고향에서 추석을 앞두고 친척이 모여 함께 조상 묘를 돌봤으나 올해에는 감염병 확산 우려로 그게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벌초 대행사에 일을 맡겼다. 뭐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무슨 대수냐 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근데 시골에서는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풍경이다. 자칫 하다가는 “근본 없는 놈”이라는 소리 듣기 딱 좋다. 몹쓸 감염병 탓에 이번에는 용케 넘어갈 수 있었지만 .

솔직히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다. 많은 이의 생각처럼 한때 유행하다 소멸할 바이러스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화사한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착용했던 마스크를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까지 늘 갖고 다녀야 할 줄은 짐작조차 못 했다.

더 막막한 것은 이 감염병 사태가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조기 종식 가능성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국은행이 국내외 여러 자료를 분석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 하반기가 돼야 실용화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도 특정 국가나 국제기구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임상단계 축소, 전폭적인 자금 지원 등을 선행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지 않고 여러 차례의 임상실험 등 통상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안전성이 입증된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4, 5년도 부족하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백신 개발에 50년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바이러스 박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상상이 된다.

쉽게 동의하고 싶지 않은 전망은 또 있다.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우리의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부도 직전에 몰렸던 1990년대 말 IMF 사태나 2008년 국제금융위기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후 6개월 여 만에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버렸다. 개인이 일상 흐름에서부터 공동체 생활 유형, 직장 문화, 기업 경영 형태, 정부의 위기관리 정책 등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변화가 코로나19가 사그라진다고 해서 곧바로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로 나뉠될 것이라는 예측이 공감을 받는 이유다.

단기간에 코로나19 근절이 어렵다면 이제는 장기적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일정 기간 이 바이러스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의미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하루하루 확진자 발생 추이에 목을 매기보다는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현재의 강도 높은 거리두기 지속은 한계가 있는 만큼 적정 수준은 유지하되 감염취약계층 집중 관리로 위중 환자를 줄이는 방법을 고려할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의료진에 집중되는 부하를 줄이는 한편 인력 보충이나 중증환자 전담 치료 병상 확대 등 지금의 방역체계를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비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의견에 공감하는 듯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당분간은 코로나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예전과는 다른 버거운 일상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인내해 방역은 방역대로 성공하고, 경제는 경제대로 살려 나갈 수 있도록 하자”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한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만으로는 이 위기를 넘길 수 없으니 정부가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가장 바람직한 정책을 만들어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코로나19 내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악한 바이러스가 긴 싸움을 하자고 한다면 이에 맞춰 적절한 맞대응을 할 수밖에 더 있는가.

이래저래 독한 마음을 먹도록 만드는 추석 언저리다.

염창현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