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총회에 보낸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를 여는 문”이라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성도 제안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막힌 남북·북미대화의 물꼬를 종전선언과 동북아 협력체를 통해 틔워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종전선언 시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7년 ‘베를린 구상’, 2018년 ‘4·27 판문점선언’, 올해 6·25전쟁 70주년 기념식 등등.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종전선언은 북미대화에서도 여러 차례 주요 의제에 올랐다. 2018년 싱가포르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바 있고, 2019년 하노이회담 때는 북미 잠정합의안에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의 시발점이다. 정전체제를 끝내겠다는 정치적 선언이 있어야 평화협상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비핵화 로드맵이다. 종전 등 평화 프로세스와 비핵화는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같이 굴러가야 할 과업이다. 북한 역시 줄곧 주장해온 논리인 만큼 당연히 호응할 것으로 기대한다.

비핵화·평화협상을 재개하려면 남북·북미만이 아닌 동북아 협력체 같은 한반도 주변국이 참여하는 다자 대화기구도 필요하다. 자기 입장에 치우치기 쉬운 양자 대화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장치가 다자기구여서다. 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총리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조건 없이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동북아 협력체가 비록 방역·보건으로 출발해도 성과를 내기에 따라 얼마든지 안보·평화 논의기구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모두가 바라는 조속한 비핵화의 지렛대 구실을 하게 된다.

이렇듯 명분은 충분하다. 문제는 관련 당사국들을 상대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외교를 펼칠 수 있느냐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든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지, 문 정부의 외교력이 마지막 시험대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