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는 요양보호사인 아내와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둔 네 식구 가족의 가장이다. 그는 살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일을 다 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기반 공사, 배수 공사, 굴착, 콘크리트 치기, 지붕 작업, 바닥 작업, 도로포장, 판석 깔기, 배관 작업, 목공, 심지어 무덤까지 파본 경험 많은 노동자였다. 그가 이 일을 그만둔 까닭은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와 겨울철 몸이 꽁꽁 얼 정도로 지긋지긋한 현장의 추위 때문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그가 찾은 일은 조경이었다. 조경 일은 이동을 자주 했고, 고객과 집과 하는 일이 매일매일 바뀌었기 때문에 지겹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게을러터져서 답답했다. 결국, 그는 조경일도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혼자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 자기 사업을 찾았다. 그리하여 그가 찾아낸 곳이 택배회사였다. 택배회사 지점장이 말한다. “당신은 여기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합류하는 거다. 우리는 그것을 ‘승선’(같은 배를 탔다)이라고 한다. 당신은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회사와 함께 일하는 거다. 당신은 고용된 기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이다. 여긴 고용계약 같은 거 없고, 목표실적도 없다. 오로지 ‘배송기준’만 지키면 된다. 당연히 임금 따위는 없고, 배송수수료를 받는다. 출근카드 같은 것도 없고 알아서 일하면 된다. 당신은 개인사업자, 가맹주가 되는 것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당신이다. 이곳은 전사만이 살아남는다. 자신 있는가?” 리키가 대답한다. “네. 이런 기회를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도입부다. 그곳 영국과 이곳 한국의 택배 현실은 단 한 치의 차이도 없이 겹쳐져 있다. 리키의 자리에 김 아무개, 또는 이 아무개라는 이름을 넣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이후 리키는 택배일을 위해 할부로 밴(택배차)을 구입하고, 주 6일 하루 14시간씩 노동을 하는 ‘개인사업자’가 된다. 자기 운명의 당당한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자기 집을 갖기 위해, 좀 더 행복한 가정을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하루 14시간 씩 노동을 하는 성실한 사업자가 됐는데도 리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피폐해진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리키는 그 해답을 모른다. 유통산업이 삶을 규정한 지는 이미 오래됐고, 그 가운데에서 택배는 우리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상품을 클릭 한 번으로 요술처럼 문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세계, 우리는 소비자로서 그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신기하고 편리한 요술 세계의 배경에는 땀 흘리는 요술수행자-택배노동자가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면접촉 생활이 줄어들고 택배물량이 30% 이상 늘어나면서 그들은 이제 장마도, 폭염도, 태풍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타나는 신출귀몰의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정녕 슈퍼맨이란 말인가.

물론 나는 40도에 육박하던 폭염의 지난여름, 착한 당신이 땀 흘리는 택배기사에게 얼음물을 대접한 사실을 알고 있다.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며 당신이 주문한 물건을 받은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랬는데도 택배기사는 여전히 힘든 하루를 보냈고, 폭염이 지나고 태풍이 지났는데도 폭풍처럼 밀려드는 택배물건에 짓눌려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착한 당신의 미안함만으로는 이 택배노동자의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다.

‘미안해요, 리키’의 마지막 장면, 배달 중에 노상강도들에게 린치를 당해 한쪽 눈이 감겨버린 리키는 다음 날 새벽, 식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차를 몰고 나간다. 일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거나 돈을 주고 대체인력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퉁퉁 부은 리키의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리키는 그렇게 아슬아슬 택배차를 운전 중이다. 올해 죽었다는 일곱 명의 택배노동자가 오버랩 된다.

하루 14시간의 노동, 그것을 방치한다면 이 요술세계의 주인인 소비자는 모두 방조자가 된다.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택배노동자가 배송할 물건을 고객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됐을 때 그 집 우편함 등에 남기는 메시지 카드의 문구, ‘Sorry, We missed You. 미안해요, 당신을 놓쳤네요’이다. 이 말을 택배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작가·헤세이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