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교수지만 보직을 통해 오랜 시간 대학 경영에 참여하다 보니 일반적인 교수와는 다소 달리,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한다. 맡고 있는 입학처장이라는 보직은 학생 선발이 주된 임무이고 특성상 늘 격무에 시달리게 되어 업무 중 쌓이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부서 회식을 하게 되는데 과거에는 직원들도 회식을 좋아했고, 한 번 하게 되면 3차 이상 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러나 요즘은 회식 문화도 건전하게 바뀌었을 뿐 아니라 직원들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신세대가 대부분이라 회식을 원하지 않는 이도 많아 예전처럼 자주 하지도 않으며 하더라도 1차에 간단한 음주를 겸한 식사, 2차 카페 정도로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식을 하고 귀가하면 아내는 늘 ‘낄끼빠빠’하라고 잔소리 같은 조언을 하곤 한다.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더니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뜻으로, 직원들하고 끝까지 같이 있지 말고 1차까지만 같이 하고 그 뒤에는 격려금이나 신용카드를 주고 적당히 빠지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심지어는 가장 좋은 건 1차 회식도 같이하지 말고 처음부터 빠지는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해줬다. 자존심이 깊게 상한 필자는 우리 직원들은 내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항변해봤지만, 돌아온 말은 “눈치가 그렇게도 없냐!”는 핀잔뿐이었다.
부서 직원들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부서장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이 50줄에 들어서였다. 그전까지는 “처장님, 중간에 먼저 가지 마시고 끝까지 함께하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부서 직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진짜 끝까지 함께한 후 마지막으로 차비까지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혀를 찰 뿐이었다. 모르긴 해도 부하 직원들의 마음을 읽지도 못하면서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직원들과 호흡 맞춰 일하는 것이 남편에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진심 어린 걱정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 부서 회식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낄끼빠빠! 타갈로어 같은 발음의 이 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의외로 크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없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인데 비단 직장 회식에서 부서장이 눈치 없이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 우리는 그동안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오히려 없어야 할 곳에 있으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또, 이런 장면은 우리 일상뿐 아니라 정치인의 행보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굳이 오래전으로 갈 것도 없이 최근 일만 상기해도 충분하다. 연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진정되는 듯했으나 대규모 집회와 일부 종교집단의 그릇된 행동으로 재확산되는 상황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질병관리본부를 눈치 없이 방문해 브리핑을 요구하는, 수해와 태풍 피해 현장에 봉사 차 등장해 적당히 시늉하다 사진 찍고 SNS에 올리며 홍보에만 열 올리는, 피해 주민을 만나 본질은 외면한 채 엉뚱한 질문만 하고 돌아와 정쟁 도구로 삼는 정치인의 모습은 늘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러 행사나 이벤트를 주관한 경험에 따르면 고위층이 행사 현장에 등장하면 참으로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달리고 촌각을 다투며 일하는 중인데 브리핑 자료 제작, 브리핑, 의전까지 추가하면 얼마나 난감한지 잘 안다. 물론 정치인이 국민의 고통 현장이나 관계기관에 등장하는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현장을 보고 정책이나 대책 수립에 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인이 앞다퉈 재난현장에 등장해 보인 행동 양식대로 여당은 효과도 장담할 수 없는 전시행정, 야당은 무차별적인 정부 공격을 위한 명분 축적용일 뿐이라면 방문을 사절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낄끼빠빠를 잘하는 부서장이 유능한 부서장이라고 속삭여주던 아내의 조언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며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그런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배우자나 가족이 꼭 있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의 ‘재해 관련 현장 또는 기관 출입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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