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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냄새를 읽는 마음 /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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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9-06 19:29:4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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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는 계획도 못 세웠는데,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올해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 사업’으로 부산 연제도서관에 출근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도서관이 휴관하는 바람에 글쓰기 수업 등 계획한 것들이 중단됐다.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의 면회금지는 언제 풀릴지 알 수 없게 됐다. 엄마의 얼굴을 본 게 반년 전이다. 올해 안에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마스크에 겨우 적응했는데 다시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니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 생활의 리듬이 깨져버렸다.

야심 찬 계획으로 시작한 2020년이었다. 하지만 지난 8개월 동안 계획 실행은커녕 내 일상을 내 맘대로 꾸려가질 못했다. 자연신에게 멱살 잡힌 채 코로나19, 물 폭탄. 태풍 등이 나오는, 길고 긴 재난영화를 억지로 보는 기분이다. 멱살 잡힐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들을 떠올리면 인류애가 사라지려 한다.

내게 남은 인류애를 지키기 위해 이 재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그나마 즐거웠던 일들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연제도서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10여 명 중 과반수는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여성이었다. 생활을 글로 쓰는 자리라서 그들의 글에는 아이가 자주 등장했다.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취소되기 직전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오감’을 표현하는 글을 쓰고 발표했다. 그중 한 사람의 글이 나를 붙들었다. 아이의 체취에 대한 글이었다. 작가는 분명 자신이 낳았음에도 자신의 품이 낯설어 우는 아이를 ‘지구인’이라고 불렀다. 여름에 태어난 아이는 매년 여름 한 가지씩 냄새를 엄마에게 선물했다.

“더운 여름, 에어컨 속에서도 지구인에게는 시큼한 젖 냄새가 났고, 그 젖 냄새를 지우기 위해 하루에 몇 번씩 샤워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냄새가 났고, 나는 지구인의 냄새가 좋아서, 지구인은 나의 냄새가 좋아 둘은 온종일 안고 지냈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봄이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는 그 여름의 냄새가 사라졌다.” ‘그 여름, 그 계절’, 박소영.

아이의 사라진 냄새는 다음 해 여름, 달콤한 ‘침 냄새’로 변신해서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 해에 찾아온 냄새는 ‘땀 냄새’였다. 올여름은 무슨 냄새로 찾아왔을까. 작가는 “모든 신경을 후각으로 집중했고, 버릇처럼 킁킁거렸다. 옳거니, 올해는 시큼한 ‘발 냄새’로구나.” 지구인을 만나기 전 작가에게 여름 냄새란 단순히 자두 향과 찐 옥수수 향이었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고 매년 여름 킁킁거리며 아이의 냄새를 찾는다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를 키워본 모두가 아이의 냄새에 대해 격한 공감을 했다. 육아를 경험하지 못한 내가 신기해하자 60대 참가자가 말했다. “아기 발 냄새? 지인짜 맛있지, 얼마나 꼬숩다꼬.” 우리는 모두 웃었다.

요즘 기분이 나빠지면 인류애를 되살리기 위해 ‘냄새를 읽는 마음’을 떠올린다. 아이의 냄새를 관찰하는 엄마(보호자)의 마음에 담긴 사랑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냄새를 찾는 행위로 바꾸어 표현하는 글쓰기라니, 참 멋있지 않은가. 내가 글쓰기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다. 지금 당장 사랑하는 이의 냄새를 떠올려보자. 사랑은 누구도 해치지 않으니까. 냄새를 읽어내는 시간 동안 짧은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의 체취는 세탁소 다리미의 스팀 냄새 같다. 물론 냄새 읽기가 무조건 쉽지는 않다.

어제 곰용 씨와 좁은 소파에 나란히 누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를 봤다.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실제 아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그때 부룩, 하고 누가 나를 불렀다. 아…, 나를 찾아와 부른 이는 냄새였다. 나는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곰용 씨가 나를 당기며 말했다. “내 방귀는 면역력에 좋다.” …이제야 고백한다. 나는 내게 남은 인류애를 지키기 위해 좁은 소파에서 탈출해야 했다. 나는 내 사랑의 냄새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가족은 정말이지, 남편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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