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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자갈치시장 ‘백화양곱창’과 ‘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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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9-02 19:32:3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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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자갈치시장에는 백화양곱창을 비롯해 수십 곳 양곱창집이 몰려 전국에서 가장 큰 양곱창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수산시장과 양곱창,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둘의 이종교배는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잘 익은 양곱창 한 젓가락.
표면적인 이유는 선원들 때문이었다. 자갈치시장과 남항 일대는 연근해어업과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다. 망망대해에서 오랜 조업을 끝내고 돌아온 선원들이 처음 발을 딛는 육지가 자갈치시장이었다. 생선 비린내와 짧게는 며칠, 길게 몇 달 살아온 그들에게 연탄불에 소 내장이 타들어 가는 연기는 그야말로 ‘회가 동하는’ 냄새였다. 꼼장어 굽는 냄새와는 차원이 달랐다. 거친 뱃일에 지친 심신을 연탄불에 구운 양곱창과 소주로 원 없이 달랬다.

흥미로운 것은 이면에 숨겨진 사연이다. 1950년대부터 부산은 화재로 엄청난 피해를 본 도시다. 1953년 1월 30일 국제시장 화재는 4260개 점포를 전부 태우고 3만여 명 이재민을 낳았다. 같은 해 11월 27일 영주동 판자촌에서 시작된 ‘부산역대화재’는 주택 3132채를 태웠다. 지금까지 남아 있었으면 한국은행 본점이나 서울역사를 능가하는 최고 근대건축물이 됐을 부산역사는 이때 화마로 사라졌다. 1954년 12월 10일 발생한 용두산 판자촌 화재는 8000여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상황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건 당시 주거형태 탓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전국에서 피란민이 몰려들어 도시의 수용능력을 한참 초과했다. 평지는 물론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이 들어섰다. 판자로 엮은 지붕은 방수가 안 되니 미군 부대에서 나온 콜타르(coal tar)를 바른 기름종이로 지붕을 덮었다. 한마디로 불쏘시개 속에서 사람이 사는 형국이었다. 이러니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대형 화재로 번졌고 시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이 아니라 불산”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로 민심이 흉흉했다.

집도 집이지만 화재로 엄청난 피해를 본 부산에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과 전쟁으로 가장을 잃은 아낙들은 호구지책으로 여기저기 좌판을 벌였다. 물건을 파는 좌판은 상관없었다. 문제는 음식을 파는 좌판이었다. 음식을 조리하려면 장작이든 연탄이든 불 피우는 화덕이 필수였다. 화재에 민감한 부산시로서는 화덕의 존재 자체가 위험천만이었다. 그렇다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의 생계수단을 무작정 없애버릴 수도 없었다. 불을 쓰는 좌판과 불을 쓰지 않는 좌판을 구분했다. 불을 쓰지 않는 좌판은 시내 영업을 허용하는 대신, 불을 쓰는 좌판은 바다와 가까운 자갈치시장 쪽으로 보냈다.

이렇게 해서 자갈치시장 쪽에는 꼼장어와 양곱창을 굽는 좌판이 모여들었고, 국제시장과 남포동 골목길에는 충무김밥, 비빔당면, 오징어무침 등을 파는 좌판이 모이게 됐다. 이러한 형태는 마치 부산의 신산했던 현대사를 증언하듯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처럼 ‘화재’를 주제로 부산 원도심을 돌아보면 뜻밖에 흥미로운 발견을 많이 할 수 있다.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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