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사나운 바람이 몰아친 듯하다. 결과는 참담하나, 사태의 본질은 명료해졌다. 코로나19는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는 것. 그리고 위기의 근원은 코로나19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일부 개신교인과 의사가 바람 구실을 했다. 그들의 반사회적 행위가 코로나19라는 안개에 가린 위기의 실체를 드러내 주었다.
위기는 개신교인에게서 먼저 나타났다. 8월 들어 12개 주요 교회에서 1400여 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교회가 국내 최대 감염원으로 불거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했다. 그래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다는 것은 이웃 사랑이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건 평화로운 세상 실현을 의미한다. 사랑과 평화는 기독교 정신의 근본이다. 그 정신 위에 구축된 게 근대 문명이다. 그런데 광화문 집회와 대면예배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려 이웃을 해치니, 문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의료계 또한 모순적이긴 매한가지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 의대생이면 누구나 졸업식에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의사의 본분은 환자 치료이며, 이를 벗어난 의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파업을 벌여 환자를 죽음으로 내몬다. 부산과 의정부에서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헤매다 숨진 건 자못 충격적이다. 육체 건강과 관련한 사회체계는 정신 건강을 지키는 종교와 함께 문명을 지탱하는 양대 축인데, 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니 어찌 문명의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 위기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은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며 대면예배 허용을 요구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게 종교의 자유라는데, 이웃 사랑을 생각할 여지가 있을까. 이러니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대면예배를 고집하는 게 아닌가.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정부가 전공의와 전임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대해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라고 했다. 의사의 직업이익을 위한 단체행동자유 앞에선 환자는 부차적인 존재일 뿐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자유는 타인의 희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자유는 과연 이처럼 이기적인 가치일까. 관련 사상을 정립한 선현들의 가르침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자유주의 사상의 비조로 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타인을 해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얘기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자유시장경제론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는 그 철학적 기반이 된 ‘도덕감정론’에서 ‘타인의 행복’을 원만한 관계 형성의 전제조건으로 거론했다. 자신과 타인이 ‘윈윈’하는 상생의 마당이 바로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는 자유시장인 셈이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우리 헌법 규정은 이런 사상에서 유래했다.
자유에 대한 오해는 폭력으로 표출된다. ‘자유를 빙자한 폭력’이다. 타인의 희생을 유발하니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모순은 코로나19 확산의 원흉이다. 코로나19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쿠바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지난 10일 현재 쿠바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는 각각 3046명, 88명(치사율 2.9%)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을 보여준다. 1인당 평균 500가구를 맡는 가족주치의들이 한 마을에 수 년씩 상주하며 주민들을 밀착 진료하는 게 그 비결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병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쿠바 아바나의대에 다니며 현지 방역에 참여하고 있는 김해완 씨는 그 비결을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동료의식이라고 했다. 쿠바 의료계가 찾은 이 간명한 진리를 우리는 왜 찾지 못하는 걸까. 자신만 살고, 자신만 자유로워지려는 이기심 탓이 아닌지 깊이 자문해볼 일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