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원의 연꽃도 찍을 겸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를 찾았다.

두물머리는 두 강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강원도 태백 검룡소(儉龍沼)와 금강산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곳으로 한자로는 양수리(兩水里)다.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 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 한강 되어 흐르네 /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장사익의 노래 ‘나는 무얼 버릴까?’를 흥얼거린다. 이기심과 집착을 버릴 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요즈음 아무리 소소한 상황에서도 나를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고 있다. 새벽 산책길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걷는 사람 때문이다. 이어폰을 꽂고 자기만 들으면 될 것을 기어이 고요를 깬다. 나의 마음이 편치 않다. 한마디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아침부터 기분을 건드리기도 뭣해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앞질러 달린다. 하지만 호수 둘레를 도는 일이고 나의 걸음걸이가 빨라 두 바퀴 정도면 또 만난다. 시간대를 30분 정도 늦추어 봤지만 그런 사람은 또 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버려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이기심 때문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다. 지나가는 분에게 슬쩍 물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깁니다.” 화가 5분 이상 지속되면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들어서 이해는 하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잘 내려가질 않는다. 시인은 자기의 것을 버림으로써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랑을 보는데….

그래, 갈등과 충돌이 빚어지는 개인적·사회적 현장에서 양극단이 판을 치는 것도 내가 옳다는 것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어 그 역설적인 패배는 생각할 여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겼을 때 내가 잃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잃게 되는 것을 따져 본 적이 없는 사회적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사(山寺)의 고요함과 풍경 소리는 공존한다. 하지만 고요함을 버리든 풍경 소리를 버리든 그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는 구절로 나의 반성과 다짐은 시작된다.

‘꽃은 스스로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고, 강은 스스로 강을 버려야 바다가 될 수 있다. 인생은 관점을 선택하는 것이고 이미 아닌 것을 놓지 않으면 영혼마저 상한다. 자식들과 친구들을 만나 세속적인 에고를 어떻게 버릴까?’ 등 스스로에 대한 세뇌와 질문을 이어간다. 뭇 사람과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관점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멋을 지닌 나를 상상하면서!

버린다는 것은 나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리라.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는, 그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배우는 것이고 좋은 관계를 맺는 최선의 방법이다. 나만을 고집하면서 자신의 시각에 빠진 사람은 남을 빠뜨릴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상대방의 시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관계의 사달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신념과 도덕적 확신이 그 주범이다.

옳은 게 언제나 옳은가? 그리고 항상 내가 옳은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성숙과 성장의 징표이며 삶의 문제를 새롭고 참신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지혜’의 다른 말이다.

벌초 때가 다가온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형제한테 이쯤에서 내가 먼저 연락하자. 이 세상 하직할 때 눈물 흘리면서 손잡고 용서할 거 미리 해버리면 안 될까? 나를 옭아매는 부질없는 자존심을 버릴 때 감칠맛 나는 인간관계도 행복도 나를 찾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는 해 바라보면서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자기가 쓴 시를 불태워 새롭게 시 앞에 설 것을 선언하는 어느 시인에게서 한 수 배운다. 무엇을 하든 내 존재 전체를 거기에 던져넣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 쇠뿔도 단김에 빼고 바로 내일 새벽에 음악 소리로 나의 신경을 건드렸던 그분 만나 ‘나를 버리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인간적이고 생뚱맞은 공개 사과를 해야겠다. 바로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신선한 예감이 든다.

교육인·전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