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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코로나 시대의 지킬과 하이드 /박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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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8-24 19:21:0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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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에서 대폭발 사고가 났다. 수천 명 사상자와 수십만 명 이재민이 생겼다. 재산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항만 창고에 보관해둔 질산암모늄(ammonium nitrate)에 불이 옮겨붙어 폭발한 것으로 본다. 질산암모늄은 비료 원료로 쓰이지만, 조금만 응용하면 화약 원료가 되는 폭발력이 큰 물질이다.

비료와 화약은 사용 목적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아 화학계의 지킬과 하이드라 부를 수 있다. 이 물질을 만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를 만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역시 지킬과 하이드 같은 삶을 살았다.

오랜 세월 인류는 농사를 지으면서 동물의 질소(窒素) 성분이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19세기가 되면 그 주요 성분이 토양 속 ‘요소(尿素)’인 것을 알고 암모니아를 이용해 요소를 합성한다. 하지만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천연 질소 비료 원료는 남아메리카 칠레에서 나는 초석(硝石)이었다. 칠레 초석은 순수한 질소 덩어리로, 물에 녹이면 바로 비료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가격은 무척 비쌌다.

1909년 독일 화학자 하버는 공기 중에 흔한 질소를 붙잡아 암모니아를 합성한다. 이 암모니아에 질산을 가하면 질산암모늄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질소 비료의 원료가 됐다. 1913년부터는 공장에서 싼값에 질소 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고 농업 생산량을 크게 늘려주었다. 인류는 사상 처음으로 기아에서 해방됐고, 1918년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있었고 하버에겐 아주 비밀스러운 일이 있었다. 전쟁 중 영국은 칠레산 초석의 독일 수송로를 틀어막았다. 초석은 비료도 만들지만, 폭약 원료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화학산업은 비료공장에서 얻은 질산암모늄을 이용해 폭약을 만들어 전쟁을 치르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하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자신의 화학 지식을 이용해 독가스를 만들고 살포하는 데 앞장섰다. 애국심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일류 과학자가 금지된 화학무기 생산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지점에서 하버는 제2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되었다.

독일이 패전하고 그의 독가스로 큰 피해를 입은 영국은 하버를 전범으로 고발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학 무기 개발에 열과 성을 다했다. 스페인이 독일 독가스를 빌려 모로코인들을 죽일 때 하버는 그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규제가 강해지자 하버는 하는 수 없이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 연구는 접고 해충을 죽이는 독가스 개발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하버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독일에서 쫓겨났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10년 만인 1943년, 하버가 세운 살충제 공장은 나치 간부의 지령서를 받는다. 강력한 살충제인 치클론B(zyklon B)를 아우슈비츠로 비밀리에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짐작하듯 아우슈비츠에는 히틀러가 ‘해충’이라 부르던 유대인들이 있었고, 이후 이야기는 독자들도 다 안다.

하버는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을 위해 과학자의 영혼도 팔았지만, 유대인이란 이유로 버림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만든 살충제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을 떼죽음으로 내몰았으니 하버는 무덤에서도 편히 쉬지는 못했을 테다.

그의 삶은 질산암모늄과 무척 닮아서 사람이나 물질이나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애초부터 지킬과 하이드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었다. 코로나19사태가 길어지면서 우리는 수많은 지킬과 하이드를 만난다. 편리해서 좋다고만 생각했던, 감추어진 해로움을 본다. 이제라도 불편함을 견디고 나에게, 사회에, 지구에 유익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끝도 보이지 않는 이 사태를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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