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에는 ‘불문율’이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 매너로 지켜지는 암묵적인 룰이다. 예컨대 축구에서는 다른 팀으로 이적한 후 친정팀과의 시합에서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다. 프로농구의 경우 마지막 4쿼터에서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으면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는 게 불문율로 통한다.

프로야구에는 불문율이 꽤 많아 보인다. 승부가 기울었을 때는 도루나 번트를 삼갈 것, 홈런을 친 뒤에는 과도하게 좋아하거나 베이스를 천천히 돌지 말 것, 노히트노런 같은 대기록을 앞뒀을 때는 기습번트를 대지 말 것 등이 주로 꼽힌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고 각자 관점과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보니, 이를 둘러싸고 충돌이 종종 일어난다. 5년 전 롯데와 한화의 사직구장 경기도 그 중 하나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당시 롯데가 1회 대량 득점으로 7-0으로 앞선 장면에서 황재균이 2루 도루를 한 것에 감정이 틀어진 한화는 황 선수의 타석 때마다 빈볼을 던졌고, 결국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레전드’ 이승엽이 1999년 국내 프로야구에서 홈런 신기록 행진을 한창 펼칠 무렵, 재미난 분석이 뒤따랐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의 부드러운 심성도 한몫을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는 홈런을 친 뒤 가볍게 몸짓을 하고 빨리 베이스를 돈다. 홈런 소감을 밝힐 때는 투수가 정면승부를 해줘서 고맙다며 자세를 낮춘다. 만일 그가 홈런 뒤 요란한 제스처를 취하고, 잘난 체를 했다면 홈런 퍼레이드는 어려웠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투수가 그를 고의로 걸리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가 불문율 문제로 시끄럽다. 추신수 소속팀인 텍사스와 샌디에이고의 그제 경기가 발단이다. 8회초 10-3으로 앞선 샌디에이고의 타티스 주니어가 3볼에서 풀스윙으로 만루홈런을 날리자, 텍사스는 불문율을 어겼다며 후속 타자에게 빈볼을 던졌다. 해당 투수와 텍사스 감독에 대한 징계로 사건은 일단락됐는데, 불문율 논란은 뜨거워졌다. 하지만 대다수 구성원은 불문율이 과하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렇지만 타티스 주니어는 1999년 당시 박찬호(LA 다저스) 투수에게 ‘한 이닝 만루 홈런 두 방’(일명 한만두)의 치욕을 안겼던 선수의 아들이라는 점이 공교롭다.

흔히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고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명언도 마찬가지다. 불문율은 동업자끼리 배려하는 무언의 약속이나, 관중과 팬들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이 스포츠정신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