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출신의 모험가이자 탐험가 마이크 혼은 1999년 6월 아프리카 서해안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 위도 0도 0분 0초 지점을 출발해 서쪽으로 대서양을 횡단했다. 적도에서 남북으로 40㎞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도보나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탈것인 자전거, 요트, 카누만을 이용한 그는 17개월 만에 적도를 일주하고 출발했던 리브르빌에 도착했다. 그의 일정은 ‘17개월 만에 끝냈다’는 한 문장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고난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갓 배운 항해지식으로 요트를 몰고 19일 만에 대서양을 횡단하고, 아마존 정글을 헤치는가 하면 해발 5700ｍ 고산을 넘기도 했다. 자연에 좌절할 뻔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을 빼는 국경의 난관을 이겨내고 2000년 11월 해피 엔딩으로 탐험을 마무리한 그는 ‘세계 최초로 적도를 따라 지구를 일주한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온갖 문명의 이기 가운데 편리한 교통수단을 골라잡을 수 있는데도 굳이 두 다리와 바람의 힘만으로 그 먼 거리를 지난다는 건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무모하기까지 해 보이는 그의 탐험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임기응변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탐험사의 한 장을 새로 쓴 이 탐험은 탐험가 자신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취감을, 보는 이에게는 크나큰 감동을 준다.
인류의 역사는 탐험과 도전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이의 실패를 발판 삼아 더욱 강한 의지와 더욱더 단단한 준비로 끝내 성공을 이루는가 하면 다른 이의 성공을 발판 삼아 다른 탐험 대상, 다른 탐험 방식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전에는 극도로 어렵거나, 최소한 쉽게 이루기 어려운 도전의 대상이 세월이 흐르며 ‘평범한’ 아웃도어 활동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1947년 부산지역 산악인들이 최초로 스키 등반을 시도해 3박 4일 만에 이룬 지리산 주 능선 종주는 이제 건각들이 하루 만에 해내는 일이 됐다. 1977년 1월 크로니산악회 대원들이 11박 12일에 걸쳐 올랐던 설악산 토왕성폭포 빙벽은 장비의 발달로 이제 웬만큼 훈련받은 산악인은 서너 시간이면 완등할 수 있다.
유럽 산악활동의 초창기에는 알프스의 고봉을 오르는 게 최고의 목표였다. 초등이 끝난 뒤 속도 경쟁의 시기를 거쳐 히말라야 고봉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후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도전 끝에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를 초등했다. 고산 등반 바람은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의 히말라야 8000ｍ급 14봉 첫 완등을 거쳐 더욱 난도 높은 등로주의 등반으로 이어졌다. 산악인 박영석은 2001년 히말라야 14봉을 완등한 뒤 2004년에는 무보급 도보로 44일 만에 남극점을 밟았고 2005년에는 두 번째 도전에서 북극점을 밟았다. 처음으로 지구 3극점(에베레스트, 북극점, 남극점) 도달과 14봉 완등,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모두 이룬 그는 북극점 탐험 후 귀국 길에 “세상에는 임자가 없다. 도전하는 자만의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요즘 시기 탐험은 방한장비나 GPS, 위성통신 등을 갖추고 이전보다 점점 향상된 기술과 경험의 도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탐험의 방식과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건 ‘도전하는’ 사람이다.
코로나19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산악인을 포함한 탐험가들의 활동도 제약을 받는다. 국내 산악계도 상반기에는 오은선의 박사학위 논문이 가장 화제가 될 정도로 탐험이나 도전과는 거리를 두었다. 상업등반으로 변질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전위적인 등반 활동이 이루어지는 히말라야도 코로나로 문을 닫아걸었다. 하지만 네팔이 먼저 지난달 말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414개의 봉우리를 다시 개방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오지의 험봉을 찾아 미답의 코스를 개척하려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일부 되돌아오리라 예상된다. 이제 언택트 시대를 맞아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도전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간은 더 멀고, 더 험하고, 더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도전 대상을 찾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도전 방법을 떠올리고 실행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생활레포츠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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