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설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학설을 뜻한다. 대부분 통설은 처음에는 소수설이었다. 공자의 유학이 진(秦)나라에서는 분서갱유까지 당했지만, 한(漢)나라 때는 국학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통설이 된 것이 대표적이다.

학문 세계에서 통설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새로운 최선의 연구방법을 쓰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고, 반증(反證·counter evidence)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자료가 출현해 분석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통설은 무너지고 새로운 통설이 대체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문이 발전하며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가능하다.

그런데 통설 중에는 학문 연구의 정치한 내·외적 타당성을 거친 결과가 아니라 특정 정치집단의 힘에 의한 것들도 존재한다. 이는 학문의 영역이 아니고 학문의 외피를 쓴 정치 선전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통설은 학문이 아니라 독단(獨斷), 즉 도그마이다. 통설이 도그마로 변질하면 그 자체로 학문을 억압하고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심지어 독단에 반대하는 이론을 제시했다고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기도 했으니 독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할 수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정권을 잡은 서인(西人)에서 분화한 노론(老論)은 일당독재를 강화하면서 자신들이 진리라고 믿는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탄압했다. 조선은 성리학이 국시였다. 성리학 종주는 송(宋)나라 주희(朱熹, 1130-1200)다. 노론 수장인 송시열(宋時烈, 1607-1689)에게 주희가 주석을 단 ‘사서집주(四書集註)’는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었다. 송시열에게 공부는 ‘사서집주’를 외우는 것이었다. 학문이던 유학이 유교라는 종교로 변질한 것이다.

조선 숙종 때 개혁적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백호(白湖) 윤휴(1617-1680)는 주희와 다른 ‘중용신주(中庸新註)’를 지었다고 송시열의 주도 하에 사형당했다. 주류 이론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선비를 사형에 처한 것이다. 사형시킨 실제 이유는 윤휴가 노론 당론과 달리 북벌을 주장하고, 노론 정파가 하늘이 정한 진리라고 고수한 신분제를 개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리학은 종교로 변질해 일체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이후 조선 사회에서 성리학에 대한 비판은 금기였고, 학문의 다양성은 실종되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실학에 관한 저서도 그의 사후 백 년이 지나 세상에 알려졌다. 이랬으니 혁신은 없었고, 나라가 망했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특히 어느 학문보다도 개방적이어야 할 역사학 분야가 그렇다. 우리 사회가 광복 이후 친일세력 청산에 실패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자국사를 왜곡하고 폄하하던 식민사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장악한 후 총독부에서 만든 학설을 지금껏 통설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 역사는 식민지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식민사학자의 핵심 이론이다. 이들은 한국사의 강역에서 대륙과 해양을 삭제해서 반도사로 축소한 후 그 북쪽은 중국 한(漢)나라가 설치한 식민지 한사군(漢四郡)이 있었고, 그 남쪽은 야마토 왜(倭)가 가야를 점령하고 설치했다는 식민지 임나일본부(任那日本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은 대부분 사료적 근거가 없는 허구다. 사료에 의하면 한사군은 만주나 하북성 일대에 있었고, 임나일본부 따위는 없었다.

광복 후에는 단국대 윤내현 교수가 방대한 사료로 한사군은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고 논증했고, 고려대의 고 최재석 교수는 300편 넘는 논문을 써서 임나일본부가 일본 열도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그러자 식민사학자들은 최재석 교수의 연구 성과를 일체 인용하지 않고 무시해 투명 인간으로 만들었고, 윤내현 교수가 북한 책을 봤다는 이유로 1980년대 국가안전기획부에 간첩으로 신고했다.

고려대 명예교수 김현구는 자신의 저서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식민사학이라고 비판한 이덕일 박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학문적 논쟁으로 이길 자신이 없으니 자신들의 카르텔이라고 믿는 검찰과 법원으로 학문을 끌고 간 것이다. 이 카르텔의 일원이었던 검찰과 1심 재판장에 의해 이덕일 소장은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2심과 대법원에서도 유죄를 선고했다면 대한민국 법원은 조선총독부 법원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대부분 국민 세금이나 학생 등록금으로 월급받는 기관에 근무한다. 연구비도 대부분 국민 세금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설마’라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광복 75주년을 맞이한 지금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롯데장학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