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태백까지 낙동강 1300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유역의 기름진 토양을 터전삼아 사람과 문화가 번창한 덕분이다. 경남 창녕에서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마주치는 경험쯤은 예사다. 경북 칠곡 중동 일대는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 9곳 가운데 남계서원(함양) 도동서원(달성) 도산서원 병산서원(안동) 소수서원(영주) 등 5곳이 낙동강 주변에 있다. 최치원 선생이 극찬했다는 경남 양산 임경대나 경북 예천 회룡포 전망대에 서면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정비사업을 하면서 강 주변의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가 입수해 공개한 목록을 보면 조사된 유적 전체 수는 1046개소였다. 한강 282개소, 금강 192개소, 영산강 120개소였고 낙동강이 452개소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단기간에 육안으로만 실시한 날림조사”라며 반발했다. 드러나지 않은 매장문화재까지 합하면 셀 수 없다는 것이다.

6월 말부터 최장기로 이어진 장마와 집중호우로 온 나라가 물난리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문화재 수난도 만만치 않다. 경남에서는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기와가 떨어지고, 산청 율곡사 대웅전 석축이 무너졌으며, 창녕 하씨고택 담장이 내려앉았다. 경북에선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고택 담장이 훼손되고 병산서원과 도산서원까지 일부 화가 미쳤다. 전남 순천의 국가사적 선암사 돌담도 무너졌다. 문화재청은 7월 말 현재 보물 천연기념물 등 문화재 13건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으나 규모는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낙동강 제방은 큰 비나 태풍 때마다 붕괴 사고가 심심찮았다. 2000년 9월 태풍 ‘사오마이’에 경북 고령의 봉산제 제방이 100m 가량 무너져 6개 마을과 농경지 수백㏊가 물에 잠겼다. 남부지방에 최악의 피해를 입힌 2002년 8월 태풍 ‘루사’ 땐 경남 함안 백산제와 합천 가현제 등이 잇따라 터졌다. 올해는 창녕 장천제가 20m 가량 끊어져 마을 2곳이 물바다로 변했다. 본류 제방 붕괴로는 18년만인 셈이다. 홍수가 나면 사람이나 짐승 못지 않게 문화재 희생도 안타깝다.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해놓고도 소장자가 숨겨버려 찾지 못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괜찮을지 불현듯 궁금해졌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