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대수명이 늘었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아니다. 자연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을 현대 의술로 못 죽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걸 산술로 쳐 더 사는 걸로 도드라지게 만드는 셈을 해서 헛된 욕망을 부채질해댄다.

생물학적 기대수명이 120세를 넘어, 지속적인 수명 연장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지만 그건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다. 1900년 이후 두 배로 늘어난 평균수명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유년기의 때 이른 죽음, 특히 신생아의 사망률을 낮춤으로써 얻어낸 결과이다. 반면 최고령자의 나이는 수백 년 전부터 거의 비슷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생물학적 수명은 불과 몇백이나 몇천 년 사이에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착각일 뿐이다. 자연에서 유전자의 변화나 진화는 단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생물학적 수명은 변함없고 다만 의료기술이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옛 선현의 혜안에 감복하는 일이 많아진다. 인생을 육십갑자로 계산하고 어디서 시작하였건 이 여정을 한번 돌고 나면 회갑이라 하여 축하한다. 잘했건 못했건 이 험난한 삶을 다 살았으니 축하받아 마땅하다. 그러니까 선현들께서는 생물학적 인생의 풀코스를 육십으로 보셨다는 말이다.

육십갑자 여정을 완주하고 나니 내가 또 계속하는 삶은 좀 미안한 감도 드는 보너스 턱이다. 하루하루가 고맙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삶을 너무 오래 지속해도 안 된다. 내가 살아내는 하루는 다른 생물의 목숨을 갈취하여 잇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살짝 고민이다.

솔직히 말해 이 이상 더 산다는 일이 내겐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나를 이곳에 보내신 절대자의 밀명을 완수했는지 미완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이만큼 살았으니 대견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잘했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너무 애통해할 일도 아니다. 다들 가야 할 길이고 치러야 할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몇 년 더 살고 말고는 우주의 스케일로 보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문제는 사람이 제 죽음을 대비하지 못한다는 거다. 야생은 동물이 제 죽을 곳을 찾아 누우면 청소부 역할을 하는 생물이 찾아와 흔적도 없이 나누고 치운다.

나는 사람이다. 내 죽음을 스스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만큼 최소한 품위를 지키며 떠나기를 바란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내 몸을 마구 헤집을 거라는 사실이 불편하다. 떠올릴 수 있는 설정 중 심장마비가 깔끔함에서 최선일 듯한데 누구든 소원대로 잘 떠나가는 나를 심장 제세동기 따위로 다시 살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 안주머니에 ‘제세동기 대지 마시오’ 적은 쪽지를 넣어두나 어쩌나 했는데 그것도 급해서 못 보면 무효이다.

유치원 다닐 때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다닌 것처럼 플래카드를 가슴팍에 붙이고 다니는 것도 상큼한 방법이 아니다. 그래 내 철학에 맞지 않지만, 돈이 좀 들더라도 ‘No CPR’이라고 가슴에 컬러 문신을 새겨야 하나 고민이다. 그것도 내복을 걷고 맨 가슴을 드러내지 않으면 헛일이다.

이제 상황이 뒤바뀌어 보호자가 되어버린 아들에게 일렀다.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그 어떤 생명 연장술도 쓰지 말라고. 이만큼의 생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장례식도 필요 없다. 내 부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장례비용 보태라는 압박으로 전달될 수도 있으니 고하지 말아라. 한 이틀 지켜본다고 해서 다시 살아날 일도 없으니 바로 화장장으로 보내 소각하고 남은 재도 보관하지 말거라. 자유로운 영혼처럼 육신도 자유로이 흩어져야 한다. 내 죽음이 자연의 다른 생명체가 목숨을 유지하는 일에 어떤 역할을 못 하고 끝까지 대기오염을 유발하고 가는 게 미안하다. 육신을 벗고 저 우주 어딘가에 있을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일 터이니 축하해다오. 평생 종교 없이도 잘 살았으니까 무슨 제니 기도니 다 필요 없다. 그 비용으로 차라리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파티를 하거라.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말했다. 내 죽은 뒤 장례식 없으니 찾아오지 말라고. 살아있을 때 저녁 한 끼 같이하는 게 더 고마우니 그걸로 퉁치자.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