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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사람 만나기 싫은 날들 /차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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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8-04 19:58:4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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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그동안 못 본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러한 모든 만남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이번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여러 개의 만나자는 약속이 잡혔다. 내가 먼저 연락한 경우도 있고 연락이 온 경우도 있다. 나와 그 사람들(그분들)은 왜 약속을 잡았을까 고민해봤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거나 같이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거나, 친목을 다지거나 정보를 교류하고 싶다는 게 이유인 것 같다. 각자 어떻게 지냈는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고, 그동안 못 봤으니 지금쯤 한 번 다시 봐야 하지 않나 싶은 의무적인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사람과 만나면 마냥 좋았던 때도 분명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 만나는 게 즐겁지가 않다.

어떤 사람과는 대화하다 보면 가면과 얘기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서늘해질 때도 있다. 그런 대화에서는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대화 상대인 내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어도 동일한 대화가 성립할 것만 같다. 사람은 없고 가면 두 개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다. 나는 왜 이 사람을 대화 상대로 필요로 하고 이 사람은 왜 나를 상대로 대화 할까. 대화를 성립시키는 것이 나와 이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상황인 것만 같은 느낌, 상황이 있고 그 상황에 엉성한 구색을 맞춘 하나의 부실한 역할극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매년 하는 신입생 대면식이라든지 특정 술자리에 가면 나오는 동일한 멘트와 동일한 캐릭터들이 있다. 분명 서로 다른 사람이 모인 자리임에도 각자 위치에 맞는 정형화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신입생 환영회의 경우에 후배는 후배의 말을 하고 선배는 선배의 말을 한다. 시간이 흘러 후배가 선배가 되면, 그들은 이전 선배들이 했던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 특정한 상황과 구조에서 오는 ‘동일해짐’에 가끔은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누구든 대체되어버릴 것만 같다. 그 자리가 필요로 하는 게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느낌이다. 그런 곳에서는 할 말 없어 하는 말과 농담과 진담, 진심과 가식, 홍보와 미디어, SNS적인 것과 사회생활이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곳에 일단 있게 되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의 구색을 맞추도록 행동하게 하는 어떤 분위기나 일종의 위력마저 작용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최근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야기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도망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스토리는 자신들을 가면 같은 존재로 바꿔버리는 그런 분위기와 위력에서 탈출하고 스스로의 대체 불가능성을 되찾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런 지점을 갈구해왔기에 이 드라마의 다섯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더욱 따스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 말고도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은 내가 보낸 신뢰가 부정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사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소식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연극계와 문학계 미투가 그렇다. 이를 전공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연극과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흔히 그 분야 거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그 사람들에 대한 미투가 터져 나왔다. 또한 최근 사퇴한 부산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모습에서도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 밖에도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크고 작은 사건이 터졌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만나기 싫은 날들이다. 내게 관심이 없는 이들과의 만남이나 내가 쉽게 믿지 못하는 상대와의 만남에는 늘 괴로움이 앞선다.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겐 만나기 꺼려지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겹치면서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든다. 사람 만나기 싫은 날들이다.

동아대 의학과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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