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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땅따먹기 놀이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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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7-23 18:54:53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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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옥희랑 땅따먹기 놀이를 자주 했다. 70년대 무렵이라 놀이터와 특별한 장난감이 없던 우리에겐 마을의 공터가 놀이공간이었고 들꽃과 흙과 돌멩이, 나뭇가지가 훌륭한 장난감이었다. 아이들이 많이 모이면 주로 고무줄놀이나 오징어놀이, 술래잡기를 했지만 옥희와 나 단둘이거나 네 명이 모일 때는 어김없이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공터에 커다랗게 사각형을 그린 다음 귀퉁이에 한 뼘 정도 반원을 그려 자신의 집을 마련한다.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한 다음 땅을 넓혀간다. ‘말’을 손끝으로 튕겨서 세 번 안에 집으로 들어오면 그 선 안은 자신의 땅이 된다.

세 번 튕겨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자신의 땅과 한 뼘 거리에 있는 땅을 자신의 땅으로 가진다. 만약 세 번 만에 되돌아오지 못하거나 사각형 테두리를 벗어나면 공격권이 상대방에게 넘어가고 땅을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말’은 납작한 돌이나 사금파리, 유리조각 등을 사용했는데 나는 사이다 뚜껑을 망치로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어 썼다. 옥희는 나의 ‘말’을 부러워했고 지는 날에는 ‘말’ 때문이라고, 다음에는 돌 말고는 쓰지 말자고 트집을 잡곤 했으나 나는 그 ‘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옥희와 나는 놀이를 거듭할수록 치밀해졌다. 네 명이 할 경우 자신의 땅이 다른 사람의 땅에 막혀 더 나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방향을 잘 잡아야 했다. 되도록 사각형 테두리 귀퉁이에 붙이려고 노력했고, 조금이라도 더 땅을 얻기 위해 고 작은 손을 쭉쭉 늘려 한 뼘의 길이를 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옥희는 욕심을 부리다가 되돌아가지 못 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매번 커다랗게 말을 튕겨 한 번에 많은 땅을 얻으려 했다. 반면 나는 소심해서 조금씩 땅을 늘려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의 성격이 땅따먹기 놀이에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무수한 사각형이 모여서 커다란 땅이 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흐뭇해했다. 그때 내가 만들었던 여러 모양과 크기의 사각형은 내 인생에서 더는 만날 수 없는 도형의 향연이었다고 해도 좋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땅이었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엄마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우리는 땅따먹기 놀이를 즐겼고 땅을 얻어 부자가 된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지금도 평평하고 보드랍던 그 황톳빛 땅을 잊을 수가 없다.

땅따먹기 놀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자기 땅을 가지고 싶어 하는 서민의 마음이 잘 나타난 전통놀이라고 한다.

물론 이 땅따먹기 놀이는 국가 간에 행해진다면 전쟁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지만, 내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는 땅 또는 흙에 대한 친근감의 발로였고 열심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의 실현이었다.

요즘은 땅따먹기 놀이를 할 땅이 없다. 모두가 자기 땅이라고 확실한 영역표시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길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빈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건물들로 빽빽하다. 학교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린 곳이 많다. 동네 공원에도 나무가 자리하고 시골 마당에도 잔디가 깔리거나 시멘트로 포장된 곳이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땅따먹기’에 너무 열중한 탓일까? 비어있는 땅이 없다. 연일 ‘부동산 카오스’ ‘당정청 엇박자’ ‘그린벨트’ 등의 단어가 신문 1면을 장식한다.

“머리를 쏙 내밀자 망치로 치고 있는 / 강서를 조준하자 강동이 헤헤 웃는 / 널뛰는 의사봉 아래 / 민초들만 터지는” (김덕남의 시조 ‘두더지 게임’)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 강서를 규제하면 강동으로, 서울을 규제하면 부산으로 몰려다니는 ‘땅따먹기’의 고수들, 그 속에 내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를 함께했던 옥희는 없으리라. 비록 한 번에 많은 땅을 가지려고 ‘말’을 크게 튕겨 낭패를 본 적은 있었지만, 옥희는 그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터득했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사각형의 테두리 안에서 놀이를 했고 그 주어진 땅에 만족했으며, 길을 막아 다른 이의 땅을 맹지로 만드는 일이 없었던 옥희는 남의 땅을 뺏으러 ‘말’을 튕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우리에게 땅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손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땅은 내일도 그대로 거기 존재하니까.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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