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큰일이다. 수도권 집중화 얘기다. 워낙 만성적인 것이라고 해도, 이제는 교정할 수 없는 지경인 듯하다. 수도권 인구가 급기야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으니 말이다. 올해 7월 1일 기준 수도권이 2596만 명으로, 비수도권의 2582만 명보다 14만 명 더 많다는 통계다. 더욱이 50년 뒤에는 수도권 1983만 명, 비수도권 1799만 명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절벽’ 속에서도 수도권의 인구 과밀은 더욱 깊어지는 셈이다. 이대로 가서는 수도권과 그에 연결된 충청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거의 사막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든다.
지역 사막화는 괜한 말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회자된다. 1940년대 후반 프랑스 학자 ‘장 프랑수아 그라비에’가 원조 격이다. 당시 수도 파리의 일극 집중화가 극심한 탓에 파리 외 지역은 사막화했다고 꼬집은 거다. 이후 프랑스가 1960년대부터 수도권 입지 규제와 지역투자 촉진, 공공기관 이전을 강력 추진하고 6대 초광역경제권 구축과 지방분권 정책 등을 펼친 끝에 균형·분권국가로 거듭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선진국과 한국을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 중 하나도 균형발전 여부다. 선진국은 다수의 거대 지역경제권 형성 등으로 균형발전의 토대를 갖춘 반면, 한국은 수도권 일극체제에 함몰된 꼴이다. 주지하듯이 수도권 비대화는 해당 권역의 과잉발전이나 교통·주택·환경난, 범죄 같은 사회문제를 초래한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 전체의 발전 잠재력을 확충하는 건 고사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확대시킬 뿐이다. 부동산·집값 문제가 숱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것 또한 그와 관련이 깊다고 하겠다.
1970년만 해도 수도권 인구는 913만 명으로 전국의 28%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50%를 넘었다. 전·현 정권이 이런저런 균형발전 정책을 내세우고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헛방인 꼴이다. 인구 외에도 각종 인적·물적 자원, 대기업체 등이 수도권에 쏠린지 이미 오래다. 참여정부 때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인사가 7년 전 ‘한국사회의 지역불균형은 이제 국가정책으로는 어떻게 교정하기 힘든 매우 위험한 상태에 도달하고 있다’고 저서에 썼다. 그보다 더 나빠진 현재, 수도권 블랙홀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굳어졌다고 해도 무방하지 싶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국가과제인 균형발전 실현에 미온적으로 보인다.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을 위한 인프라 조성만 해도 그렇다. 부산 부전~경남 마산 복선전철 사업이 단적인 사례다. 이는 동남권의 단일 생활권과 광역경제권 구축에 필요한 요소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수요 부족 등을 이유로 국비 지원에 부정적 입장이다. 한마디로 기가 찬다. 수도권의 광역철도망 건설·운영에 국비를 쏟아붓는 것과는 너무 달라서다.
이러니 ‘서울에서는 지방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3년 전 대선주자 때 종종 썼던 멘트다. 2017년 1월 부산과 전남 나주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균형발전정책이 참여정부 때와 달리 거꾸로 간다고 비판하며 그렇게 언급했다. “수도권이 비대해지고, 수도권의 흡입력으로 지역의 돈도 사람도 다 끌어가는 상황에서는 지역이 살아날 수 없다”면서 균형발전·지방분권의 강력한 재추진을 역설했던 거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2개월이 됐으나, 대선 공약인 균형발전·지방분권은 요원하기만 하다. 지역민의 피부에 와닿는 진전과 성과는커녕,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다. 인구를 비롯한 각 분야의 수도권 집중도가 억제되기는커녕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게 모든 걸 말해준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의 영향은 설상가상이다. 얼마전 산업연구원의 자료가 극명하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제조업·서비스업 모두에서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의 타격이 두드러진 걸로 나타났다. 회복 탄력성이 수도권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지역 간 경기 편차 확대로 이어지면서 비수도권의 인구 유출 속도가 빨라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1~4월 수도권으로의 순유입 인구는 동남권 1만4191명을 포함해 총 5만5648명에 이른다.
수도권 블랙홀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물론 획기적인 분산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권역별 광역경제권 구축과 함께 지방재정 확충, 지방대학 육성, 지역혁신 역량 강화 등에 전력을 기울여야 균형발전의 희망이 보일 터다. 지방분권 개헌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얼마전 통계청의 조사결과에서 새삼 보듯이 젊은층이 취업과 교육을 위해 수도권으로 계속 몰려들고, 그 권역에 눌러앉는 게 우리의 변함없는 현실이다.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지방은 몰락·소멸을 피하기 어렵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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