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는 끝났다. 제갈길 가자’. 우여곡절 끝에 개문발차한 21대 국회의 현재 모습이다. 공룡여당이 탄생할 때부터 우려했던 사태가 결국은 현실로 나타났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없다.

여야는 총선 민의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민생경제는 추락했고, 남북관계는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국회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의회권력을 사실장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일하는 국회’를 명분으로 단독 원구성을 감행했다. 17대 국회 이래 원내 제2당에 관행적으로 배정해왔던 법사위원장을 빼앗아가더니, 상의도 없이 야당의원들의 상임위도 강제로 배치시켰다. 화가 난 야당이 협상을 거부하니,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버릴 수 있다고 되치기했다. 야당의 퇴로를 차단하고 궁지로 몰아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래통합당은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라, 국민만 보고 싸우겠다”고 투쟁을 선언했다. 25일 복귀한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할테면 해보라”고 맞섰다. ‘176석+알파’의 힘으로 당장은 국회에서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제1야당의 협조를 받아 국정을 운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35조3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도 처리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기대난망이다. 결국 모든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해야 하고, 모든 책임도 여당이 져야 하는 비정상적인 의회로 빠져들고 있다. 협치 실종이다.

‘일하는 국회’, ‘야당의 법안처리 발목잡기 원천봉쇄’를 명분으로 여당에서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 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네 차례의 법사위 전체회의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민주당은 단독상임위에서 연일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친문 핵심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의 뒤집기에만 관심을 보였다. 뻔히 예상되는 파행을 불사하고서라도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려 했던 속내를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4일 감사원 업무보고에서는 감사원의 현안인 월성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감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검찰에 대한 감사만 주문했다. 검찰총장이 국회 법사위에서 업무보고를 하지 않는 관행도 따졌다. 당연히 감사원장이 답할 내용이 아니다.

법원행정처와 법제처 등에 대한 지난 23일 업무보고에서 여당 의원들은 확정판결이 난 개별재판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벌써 5년 전에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판결이 끝난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과정을 추궁했다. 일부 의원은 ‘재판 소원(訴願)’까지 운운했다.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나 다름없다. 헌법에 규정된 3권분립이 무색할 지경이다. 혹시 거대여당의 뇌리 속에 ‘우리가 지나가면 그곳이 바로 길이다’라는 오만함이 깔려있는 것이나 아닌지.

앞서 지난 18일 법사위 회의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 때리기’ 경쟁이 벌어졌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불러 정부와 여당이 검찰 때리기 ‘협공’에 나섰다. 여권의 ‘윤석열 몰아내기’ 시도는 이미 새로울 것도 없다. 여당 최고위원이 “나라면 물러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어떤 이는 “지난 총선 결과는 윤 총장이 빨리 거취를 결정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라는 궤변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놓을 정도다.

법사위 바깥에서도 사법권의 독립을 해치는 발언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당내 회의에서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고, 2심 재판이 진행중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사건’에 대해 특검수사가 조작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과 사법부를 향한 공룡여당의 전방위 공세가 시작된 느낌이다.

윤석열 검찰은 현재 조국 일가 사태,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개입 의혹사건, 드루킹 사건, 윤미향 의원 기부금 유용 의혹, 라임자산운용사태 등 권력형 비리 내지 여당 의원들이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수사중이다. 그래서 윤석열 밀어내기 시도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검찰청법으로 보장한 것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말고,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있게 정의를 구현하라는 안전장치다. 그런데 최근 여권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 ‘검찰개혁=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몰아내기’, ‘윤석열=검찰 개혁의 걸림돌’로 모아졌다. ‘검찰개혁=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검찰’이 아닌가?

야당이라고 잘한 것 없다. 거대 여당이 이럴 줄 몰랐다는 것은 순진한 변명이다. 20대 국회 막판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던 일이다. 이번에도 욕심이 앞섰던 것이다. 언제까지 벼랑끝 전술에만 의존할 것인가. 파행은 결국 여야 공동책임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힘든 시기, 진짜 일하는 국회를 보고싶다.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