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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사이버시대 삐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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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정인숙 사건 괴담을 접한 게 삐라를 통해서였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경험담이다. 1970년대나 80년대 북한이 남한에 내려보낸 삐라(전단)에는 북한의 체제 선전 뿐 아니라 남한 정권의 치부를 들추는 내용도 많았다. 정보가 강력히 통제되던 군사독재 시절 대학가 운동권 학생들은 북한 삐라를 몰래 돌려보며 자신들이 속한 세상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전율을 나눴다.

지금처럼 남북관계의 초경색 국면에서 북한이 공언한대로 대남 삐라를 원하는 지역에 떨어뜨리려면 북풍이나 북서풍이 불어야 한다. 반대로 남한에서 북한으로 삐라를 보낼 때는 남풍의 도움이 필요하다. 북한의 강원도 북부가 최종 목적지면 남서풍이, 평양과 그 위쪽이 타깃이면 남풍이나 남동풍이 제격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북풍이든 남풍이든 상당한 무게를 떠받칠 정도의 강한 바람이 때맞게 잘 불어주지 않는다. 특히 요즘 같은 초여름엔 북한이 바라는 북풍이나 북서풍이 더 드물다.

핵 보유를 선언했던 북한이 종이쪼가리 하나 때문에 떨고 있다. 남한의 탈북자단체가 얼마전 3대 세습왕조인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과 남한의 자유로운 삶이 담긴 전단 책자 DVD USB 등을 대형 풍선으로 북에 실어 보낸 게 사건의 발단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지난 2년간 양측이 쌓아온 신뢰를 송두리째 뭉개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전단이 진짜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도발을 위한 핑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이 자랑하는 핵무기나 생화학무기가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뒤엎을 비대칭 전력이듯, 남한의 전단 살포 능력이 초강력 통제사회인 북한에 대한 비대칭 전력임은 이번 사건을 통해 뜻밖에 드러났다.

대남 전단의 대통령 비방은 더이상 남한 사회에서 뉴스도 정보도 아니다. 인터넷에선 훨씬 수위가 높은 정권 비판도 자유롭게 유통된다. 북한의 실상은 남한에 거주하는 4만 명 가까운 탈북자들의 증언이 한층 생생하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도 전자 기기가 많이 보급됐고, 상당수 주민이 중국 등을 통해 유입되는 책이나 영상을 통해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접한다. 디지털 문명의 선두에 서있는 남한과 상대적으로 소외된 북한이 새삼스럽게 벌이고 있는 삐라전쟁은 컬러시대에 흑백TV를 켠 것같은 생경함을 준다. 지금의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가 길에서 북한 삐라를 줍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증샷 찍기 놀이의 새로운 소재나 되지 않을까.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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