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임신한 아내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젊은 부부를 보았다. 보자마자, 그저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하는 말이 머릿속에 바로 스쳐 지나갔다. 임신을 하고 있었던 시절, 아내는 종종 주변의 아이 엄마들이 임신했던 시절이 부럽다는 얘기를 한다고 했다. 여러모로 몸도 힘들고, 자유롭지도 못하고, 임신 우울증 같은 것도 오기 마련인 시절이라, 아내는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알 듯 모를 듯하다면서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내는 종종 임신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로서는 대단한 몸의 변화 같은 걸 겪지 않는 터라, 그 극적인 변화나, 이 시절과 저 시절의 결정적인 차이 같은 걸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고, 어딘지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둘이서 손을 꼭 잡고 부지런히도 걷곤 했던 나날들, 매일 아내의 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주던 밤들, 아내를 혼자 둘 수 없어 어디에서든 일이 끝나마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오던 순간들, 함께 걷고 또 걷던 날들, 아이의 작은 옷이며 침대 같은 걸 준비하던 시간들 같은 것은 확실히 그리운 데가 있다.

처음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는, 정말이지 낯설고도 설레고 긴장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눈도 못 뜨는 이 시뻘건 아이가 정말 나의 아이라니! 그 기분은 다른 무엇과 비유하기도 힘들고, 더 설명하기도 힘들어서, 그저 ‘아이가 태어난 느낌’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방법이 없을 듯하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 그 이상한 느낌에 적응하며 몇 달을 보냈던 것 같다. 두 시간마다 울어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고, 새벽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또 아이를 위해 에어컨을 항상 23도로 맞춰두느라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보냈던 나날들이 몽롱하게 기억날 뿐이다. 그런데 그 다시 오지 않을 나날들도 역시 그립긴 마찬가지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직 셋이라는 느낌은 덜하던 때여서, 우리는 아이를 가능하면 부모님께 부탁할 수 있는 최대한 부탁하여 맡기면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려 했다. 지금은 꽤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둘이서 남해나 경주에도 놀러 갔다. 여행 중에는 아이를 생각하면서도, 아직 연애하던 시절의 느낌 같은 것이 짙게 남아있던 터라 둘이 보내는 시간이 꿈처럼 좋았다. 남해의 아담한 마을에 들러 바다를 구경하며 커피와 막걸리를 마시고, 경주에서는 늦은 밤 야경을 보며 걷던, 그런 둘만의 시간들은 아마 그 시절이 거의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중에 아이가 많이 크고, 다시 둘만 있어야 할 시간도 오겠지만, 역시 그 시절의 기분이랄 것과는 또 다른 기분으로 그 나날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올해는 둘이서만 있었던 시간 자체가 다 합쳐도 몇 시간 되지 않을 것 같다. 아이가 꽤나 크기도 했고, 그래서 어디든 데리고 다닐만해졌다. 또 주말부부 생활을 하느라 주말 만큼은 우리 둘 모두가 아이랑 있어 주자는 합의 같은 게 생겨서 아이를 떼어놓고 어디 간다는 건 역시나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만큼 셋이서 보낸 날들이 꿈처럼 쌓여가는데, 나중에는 아이랑 있어 주고 싶어도 아이가 별로 그러길 바라지 않는 나날들도 올 것이다. 또래랑 뛰어놀고, 친구랑 여행을 가고, 홀로 삶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마주해보면, 역시, 그저 이 시절에 누릴 수 있는 행복들을 가능한 한 움켜쥐고, 이 순간을 온전히 사랑하고자 애쓰는 것만이 삶에는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어린 아들을 중간에 두고 양손을 하나씩 잡고 걷는 어느 부부의 모습을, 내가 얼마나 그들을 그립게 바라볼지 알 것 같다. 그렇게 이 세상 모든 곳에는 저마다의 삶이 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의 추억처럼 남아서 길가를 떠돌고 있다. 삶이란 그렇게 넓어져 가고 이해돼 가는 것 아닌가 한다. 그렇게 사랑하며, 아쉬워하고, 떠나보내고, 또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