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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시럽빙수, 팥빙수, 망고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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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6-10 19:36:1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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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과연 얼마일까?’ 미식가나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이맘때면 다들 궁금해 하는 관심사. 바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판매하는 ‘애플망고빙수(애망빙)’의 가격이다. 2011년 처음 판매될 당시 2만9000원(세금·봉사료 별도)이었던 가격은 해마다 꾸준히 상승했다. 판매량도 덩달아 늘었다.

한 그릇의 빙수에는 10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애망빙 하나에는 제주산 애플망고 두 개 분량이 사용된다. 따라서 현지의 망고 시세가 가격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8년부터는 제주의 망고 시세와 판매가를 연동시키는 ‘원가연동제’를 도입했다. 2018·2019년 5만4000원에서 올해 5만9000원(세금·봉사료 포함)으로 인상됐다. 5만9000원이라는 가격에서 신라호텔의 고민이 엿보인다. 빙수 하나에 6만 원을 받는 건 천하의 신라호텔이라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애망빙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예약을 하거나 대기해야 먹을 수 있다. ‘인싸’라면 SNS에 애망빙 인증샷 한번쯤 올리는 게 기본이다.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호텔 측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주말 및 공휴일에는 제주 애플망고 빙수를 판매하지 않는다’며 고객의 양해를 구할 정도다. 신라호텔을 비롯한 특급호텔의 여름철 ‘빙수전쟁’은 고대와 중세의 빙수와 묘하게 오버랩 된다. 더운 여름에 차가운 얼음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권력의 상징이었다. 고대 로마의 황제는 알프스의 만년설을 갈아서 꿀과 레몬즙을 올려서 먹었다. 중국 송나라 황제는 복날이면 꿀과 팥으로 버무린 얼음을 대신들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제빙기술이 일반화되면서 빙수는 서민의 디저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빙수가 유행했다. 어지간한 동네에는 얼음공장이 하나씩 있었다. 가로 58cm, 세로 110cm, 무게 36관(135kg)짜리 규격화된 얼음이 양산되면서 거리 곳곳에 빙수장사가 등장했다. 수동식 빙수기계로 간 얼음을 사발에 꾹꾹 눌러 담고 ‘빨강물, 노랑물’로 불리던 시럽을 뿌린 빙수였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붉은 시럽이 뽀얗게 갈린 얼음을 물들이는 그 느낌이 너무 강렬했다. ‘빨강물, 노랑물’의 정체가 궁금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무탈하게 그 시절을 지나왔다. 시럽빙수가 팥빙수로 정착된 건 양과자점이 여름철 메뉴로 빙수를 선택하면서부터다. 1980년대까지 양과자점의 대표 상품은 단팥빵이었다. 팥을 달고 부드럽게 삶는 건 제빵사의 기본이었다. 빵 속에 들어가던 팥소를 얼음 위에 올리면서 팥빙수의 시대가 열렸다. 우유, 연유, 찹쌀떡, 체리젤리 역시 양과자점에서는 흔한 재료였다. 열대과일 통조림이 수입되면서 팥빙수는 더욱 화려해졌다. 이렇게 양과자점 팥빙수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빙수의 춘추전국시대와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양과자점 팥빙수 또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서울의 태극당과 밀탑, 부산의 백구당, 군산의 이성당, 대전의 성심당 등 각 지역의 맹주들은 저마다 1970~80년대 팥빙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판매한다. 추억을 소환하면서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맛이다. 적어도 빙수에 있어서만큼은 로마제국이나 송나라 황제가 부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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