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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황경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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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6-02 19:46:2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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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씻기 조진다’는 말이 있다. 필자의 노모가 자주 하던 말이다. 위생적이고 깔끔한 성격의 엄마가 아기를 위한다고 너무 자주 씻길 때 하는 말이다. 뭔가가 과할 때 하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아무리 선한 의도도 과하면 본질(아기)을 잃는다는 뜻의 말이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 초까지는 조국이라는 이름이 온 나라의 언론과 SNS를 도배하더니, 최근 한 달은 윤미향과 이용수라는 이름이 도배하고 있다. 근 1년 동안 한 사회의 의제가 조국과 윤미향이라는 두 인물에 대한 쟁점으로 국한돼버렸다. 정치는 거대 여당 대 집권에 실패한 야당·조중동의 대결로 축소돼버렸다. 하나의 이슈가 떠오르면, 거기에 몰려들어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서로를 향해 물고 뜯고 싸우는 일이 유행처럼 돼버렸다. 문빠냐 아니냐, 적폐세력이냐 아니냐, 토착왜구냐 아니냐, 진보냐 아니냐, 입진보냐 아니냐, 수구냐 아니냐….

자의적인 선들이 함부로 그어지고, 선의 이편과 저편이 나뉘면, 그때부터 오로지 적을 향해 물고 뜯고 뒹구는 ‘개싸움’,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 사이 철탑에 오른 노동자, 날마다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 일을 못 해 아사 직전인 비정규직, 문 닫고 폐업하는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 개인(부분)의 문제로 돌려졌다. 시민은 날마다 적과 싸우고 있는데, 똘똘 뭉쳐 적을 이기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싸우면 싸울수록, 이기면 이길수록 적은 사라지지 않고, 더 많아지고, 더 강력해지고, 삶(일상)은 변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맞다 아니다,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며 날마다 준별하고, 날마다 싸우고, 날마다 주장하는데 정의(진실)는 떠오르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의(진실)는 도대체 어디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정의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진실의 속성 때문에 그렇다. 진실은 옳음, 바름, 맞음, 우리 편 위에만 서 있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진실은 그름, 비뚤함, 틀림, 남의 편 위에서도 진실일 때 진실일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만약 진실이 있다면, 만약 그게 진실이라면, 진실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진실은 편을 나누어 주장한다고 떠오르는 그런 가벼운 부표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진실은 이편과 저편으로 나눠서 피는 꽃이 아니다. 진실은 이편과 저편의 경계, 그 경계를 지우고 허물며 피는 것이다. 진실은 단정이 아니라 판단의 유예 속에, 발성이 아니라 더듬는 침묵 속에, 재빠른 개입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인내 속에, 말하는 입이 아니라 듣는 귀 속에서, 시간(역사)이라는 중력을 견딘 이후에 자란다. 행여 진실이 사라질까 봐 지레 걱정하지 마시라. 진실은 다만 가려져 있고 은폐돼 있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시 윤미향(정의연)으로 돌아와 보자. 30년의 운동, 30년의 일관성, 30년의 헌신이었다면, 그것이 진실이라면, 이용수 할머니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윤미향일 수밖에 없다. 그 누가 어떤 억지와 추론과 분석과 곡학아세와 왜곡을 일삼더라도 그 진실에 가장 육박할 사람은 윤미향일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진심을, 할머니의 의도를, 할머니의 트라우마를, 할머니의 섭섭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윤미향이어야 한다. 당사자 할머니와 30년간 동행한 당사자, 그 윤미향 말이다.

이용수냐 윤미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용수와 윤미향(정의연)의 관계, 이용수와 위안부 운동의 관계, 그 관계의 질곡에 새겨진 주름(시간, 역사)의 문제다. 역사(시간)가 옳다 그르다 선언하거나 판단하는 건 오만한 짓이다. 그 관계에 새겨진 주름을 복기하는 일, 그 시작은 당사자 이용수와 당사자 윤미향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작금 윤미향에겐 지난 30년 자신의 일관성(헌신)에 대해 응답해야 하는 특별한 성찰의 시간이 주어져 있다. 아기(진실)를 씻겨 조지지 않으려면, 우리도 잠시 이 아기에 대한 선의를 거두고 다른 아기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가 부르지 않은 아기들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작가·헤세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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