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이 물류기업을 자회사로 설립하겠다고 해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언론이 보도한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니 해당 대기업이 해운업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해운업계를 중심으로 반발하다가, 막상 그 대기업이 물류 자회사 설립 추진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물류업계가 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언론에 기고한 국책 연구소 출신의 유명한 학자는 해운업 발전 전략, 국제적 경쟁력 강화 방안, 기존 해운업계와 상생해나갈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대기업이 해운업에 진출하게 되면, 부작용만 초래하고 해운업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대자본의 3자 물류(물류 관련 비용 절감하고자 제품 생산을 제외한 물류 전반을 특정 전문업체에게 위탁하는 것) 업체가 오히려 선박회사를 지배하는 요즘 물류산업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일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운송 관련 판례를 분석하다 보면, 우리나라 판례에는 이해하기 힘든 물류체인이 발견된다. 이미 자회사로 물류업에 진출한 대기업이 더러 있는데, 이들 회사가 모기업의 수출입 화물에 대한 운송주선을 하면서 다시 다른 물류기업에 하도급을 줘 운송주선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애초에 물류자회사는 물류업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물류업을 영위하기보다는 통행세를 받고, 실제 운송주선은 다른 물류회사에 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형태는 운송을 실제로 수행하는 물류기업과 선박회사에 비용을 전가하고, 상품에 반영되는 물류비는 절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근거가 된다. 업계, 학계, 언론이 비판을 제기함에도 뚜렷한 비전과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다음은 해운회사(선박회사)의 설립에 대한 우려인데, 대체로 화주기업이 해운업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본다. 화주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내부자 거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물류자회사에 제기되는 것과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해운산업이 정상화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산업계의 분업체계는 확실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운송주선업 등 물류기업과는 달리 대자본이 투입되는 선박회사의 경우에는 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다.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 이후 해운산업에 장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 해운산업은 2016년 한진해운이 도산한 이후 심각한 위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복 과잉이 근본 원인이기는 하지만, 우리 해운업계는 지나친 부채 비율 등 재무구조의 취약성이 더 큰 이유로 진단된다. 우리의 경제구조상 해운업은 국가 필수산업이지만, 현재 해운업의 수익구조가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해운업에 진출하는 것이 정책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이 해운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소위 10대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오늘날까지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 외에 해운산업에 정부가 제시한 뚜렷한 비전이나 정책을 보지 못했다. 산업정책의 핵심은 기업이 스스로 생존하고,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해 나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책 부재가 수십 년간 이어져 오지만, 이를 비판해야 할 학계 역시 어려울 때 지원을 요청하는 업계를 대변하는 수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선박의 수명이 30년 이상 되다 보니 선복과잉이 쉽게 발생하는 해운업의 특성상 완전경쟁체제는 해운업의 공멸을 가져온다는 것이 1916년 미국 해운법 제정의 배경이다. 세계적으로는 독점금지법이라는 강력한 통제수단을 원칙으로 지키면서 해운법을 통해 예외를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가 해운정책의 골격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해운정책은 모두 독점금지법과 해운법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도 공정거래법과 해운법이라는 정책수단은 있지만, 이 수단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전시와 같은 해운 위기의 시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해운업에 진출하는 기업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모자회사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공정거래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계열분리 시점, 내부자 거래 통제, 장기 비전 등을 포함한 사업계획과 실천 방안을 충분히 판단해 허용 여부를 결정하면 될 일이다.

시대에 맞는 방향성 제시, 정책수단의 적극적 활용이 해운정책의 핵심이 아닐까?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