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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도시재생사업 한다며 지역 문화유산 철거해서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01 19:36:3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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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가 도시재생사업을 명분으로 주요 근대건축물을 철거하려해 논란이다. 구청 건너편에 있는 대저수리조합 사무동과 비료창고 말이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지어진 이 건물은 김해평야 일대 농업의 역사를 안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는 게 건축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구청은 이걸 헐어버리고 서부산영상미디어센터 등 문화시설을 지어 낙후된 강서구의 도시재생 핵심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산은 개항 이후 한반도에서 근대화와 산업화가 가장 빨리 이뤄진 데다 피란수도의 역할까지 겸했기 때문에 근대 역사성이 농축된 건축물이 유독 많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저수리조합 건물도 일제가 1908년 군산에 최초로 만든 옥구서부수리조합과 함께 비교적 초창기에 건립됐다. 낙동강이 자주 범람해 벼농사가 잘 되지 않자 치수 시설과 비료 판매를 통해 식량 증산을 꾀하고 궁극적으로는 수탈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이었다. 강서 농업의 역사 뿐 아니라 일제 수탈의 현장이라는 의미도 함께 있는 건물인 셈이다.

지역 학계에서는 최근 20여년간 철거된 근대 건축물을 100곳 이상으로 본다. 한국 최초의 유치원이었던 부산유치원, 최초의 근대식 물류창고였던 남선창고, 부산 전차의 흔적인 고관변전소, 피란민 수용소로도 사용됐던 부산의 마지막 단관극장인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등이 모두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부산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근대건조물 보호를 위한 조례를 만들고 전수조사해 이를 목록화하는 작업을 진행중이긴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역사는 자꾸 지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건축물이 대부분 일제와 관련돼 있어 보존과 철거의 기로에서 늘 논란거리가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둡고 치욕적이더라도 실재했던 역사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하고 선택적 교훈을 추구할 만큼 우리의 국력도 자랐다. 허름한 건물을 무조건 없앤다고 도시재생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과거의 기억이 오늘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게 그 도시의 수준이다. 건물이 정식으로 문화재 등록이 됐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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