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날씨 좋을 때 우리 집 옥상에서 고기나 구워 먹자. 단체채팅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친구들은 옥상에 대한 각자의 ‘로망’을 내보였다.

친구1이 ‘옥상파티’ 사진을 보여줬다. 꽃으로 장식된 테이블 위에는 값비싼 접시와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 놓여있었다. 친구2가 캠핑장에 있을 법한 ‘바비큐 그릴’ 사진을 보내왔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부담스러워서 코로나를 핑계 삼아 오라는 소릴 미루고 또 미루었다. 하지만 친구3이 산복도로 야경을 궁금해하는 바람에 불쑥, 오라고 해버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친구3이라서.

친구3은 이혼을 준비 중이다. 지난 1년 동안 타국에 있는 남편과 여러 송사를 통해 싸워야 했다. 자식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법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 달 전, 어린 자식 둘을 결국 남편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혼자 남은 그녀는 아직 몇 번의 싸움을 더 치러야 한다. 외로운 싸움이다. 나는 반년 만에 대청소를 했다. 남편은 옥상을 수리하고 조명을 설치했다. 부처님이 오셨다는 4월의 마지막 날, 그렇게 친구들은 우리 집에 모였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썩하게 즐겼다. 친구3은 자신의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야, 내가 ‘행복 전도사’다. 지 남편한테 불만을 품다가도 내가 겪은 일을 들어보면 ‘아, 나는 결혼 잘했구나, 행복하구나’ 깨닫는다.” 친구가 예상보다 씩씩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무너졌다.

해 질 무렵, 옆집에 사는 서너 살 된 아이의 떼쓰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친구의 눈물 단추(button)였다. 친구는 급히 귀를 막았지만, 흐려진 그녀의 눈은 먼저 알아차리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터지고서야 친구는 속엣말을 꺼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엄마 옷을 꼭 붙들고 놓지 않다가 긴장이 풀려 잠이 든 사이 아빠에게 보냈다는 네 살배기 첫째, 남편을 닦달해서 받은 영상 속에 쑥 빠진 얼굴로 쪽쪽이를 빨면서 ‘엄마’만 부르고 있던 두 살배기 둘째 이야기. 이 시국에 해외에 있는 아이를 어떻게 만나겠는가. 일 년 동안 절에 다니면서 오직 하나의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그런데 그걸 안 들어주시더라. 부처님 오신 날에 이런 소린 좀 그런가.” 서럽고 서러운 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가 없어서 우리는 같이 울었다.

그렇게 4월을 보내고 맞은 5월의 첫째 날. 나는 청소를 마치지 못한 곳의 짐을 꺼냈다. 여러 잡동사니 중에 엄마의 옷 상자가 나왔다.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가 입었던 옷.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그 뒤 이사를 하면서 풀지 않았다. 옷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무심코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눈물을 쏟았다. 내 인생에 나비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내 눈물 단추로 삼게 될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게 “아, 엄마 보고 싶다!” 외치고선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그 티셔츠를 보는 순간, 아직 건강하던 엄마와 부산진시장에서 신혼살림을 사려고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나비 티셔츠는 그곳에서 내가 골라서 엄마에게 사준 옷. 딱 이맘때, 봄날이었다. 그때의 엄마는 어디에 있나.

코로나19 때문에 엄마가 입원한 병원은 몇 달째 면회금지였다. 정신이 온전치 않고 목소리에 힘도 없어서 통화가 불가능한데 병원에서는 사진 한 장만이라도 찍어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버이날, 휴대전화 문자로 한 장 받을 수 있었다)

알고 있다. 지금 엄마를 지키려면 엄마를 보지 않는 것이 맞다. 포기해야 얻는 것이 있다. 친구3은 울면서 말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내가 아이들을 포기해야 하더라고. 친구는 자식이 그리워서, 나는 엄마가 그리워서 운다. 그들이 있는 곳이 무슨 ‘파란 나라’도 아니고… 한 번쯤 가보고 싶어도 생각만 하는 곳이라니 억울하다.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슬퍼서 우는 사람이 어디 우리 둘뿐일까. 억울하게 가족과 헤어진 분들, 곳곳에 숨긴 눈물 단추를 밟는 분들, 모두 잘, 아무쪼록 잘, 견디시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