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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블루’가 용기와 희망의 색이길 /정일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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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4-30 19:13:05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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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블루(Blue)’란 단어에 아주 다양하고 섬세한 색깔이 있습니다. 우리는 블루에 대해 ‘푸른색’ 하나로 퉁치지만, 색체학적으로는 아주 섬세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마치 푸른색을 칼로 촘촘한 간격으로 잘라놓은 것 같습니다.

가령 ‘오리엔탈 블루(oriental blue)’와 ‘코발트 블루(cobalt blue)’를 다른 색으로 봅니다. 오리엔탈 블루는 ‘동양에서 도자기나 천에 쓰이던 색에서 유래된 청색’이며 코발트 블루는 ‘유화 물감으로는 필수적이며 도자기나 유리의 색료로도 쓰이는 표준적인 청색’을 말한다고 합니다. 제 눈에는 같은 색인데 다른 색깔이라 합니다.

또한 블루는 ‘우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라 블루’는 코로나19 현실에서 겪는 우울증을 통칭합니다.

전 국민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산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을 지내 사람, 웅녀가 됐다고 하는데 아직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에 전 세계가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아직 서곡에 불과한데 우리의 내상은 심각합니다. 사람이 되기를 실패한 호랑이처럼 자꾸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어 합니다.

코로나 블루는 지금 그리고 여기가 만든 신조어지만 의학계에서 ‘병’으로 봅니다. ‘기분장애’에 ‘감염성 스트레스’로 분류됩니다. 작은 증상에 코로나가 아닐까 걱정하고, 무엇보다 감염되면, 격리되거나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지나치게 합니다.

무릇 스트레스는 충격의 원인이 없어지면 사라집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에 일부 사람에게 정서불안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두통, 두근거림, 불면증 등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소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라지고 나니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일자리와 지갑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청춘들에게 눈을 돌리면 코로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앗아갔습니다. 그들은 지금 춥고 가혹한 밤이 계속되는 ‘흑야(黑夜)’를 겪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군 입대를 앞둔, 감염 증상을 보인 대구의 10대가 부산으로 이틀간 다녀가 ‘슈퍼 감염자’가 될지 모른다고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입대했다 해병대 훈련소에서도 퇴소 조치된 19살 그 친구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저는 차마 그 친구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겠습니다. 피해를 입은 분들께 ‘청춘의 블루’에 대해 이해해 달라며 대신 용서를 청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집 가까운 봉곡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는 즐거움도 선뜩 나서기 힘든 두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들과 호기롭게 생맥주잔을 들던 일, 손님이 줄을 서는 유명 커피숍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하늘이 좋은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즐기던 일, 공연장에서 환호하던 일이 그렇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로 수시로 손을 씻으며 언제 복귀할지 모르는 일상의 회복을 저 역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일상으로 오랫동안 복귀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스프링은 누르면 누를수록 더 세게 튕겨져 나오는 법입니다. 억눌리고 억눌린 우울이 이번 황금연휴로 터져 나오는 모양입니다. 제주도지사의 제주 방문 자제 요청에도 많은 사람이 제주행 비행기를 타거나 티켓을 끊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조심해야할 시간에 우리는 코로나19 우울을 이유로 떠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역시 죄는 아닙니다. 다들 꾸준하게 지켜왔던 행동수칙을 실천하며 섬 안에서 또 다른 섬을 만들며 숨을 크게 쉬고 싶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파도소리에 귀를 열고 편안하게 잠들고 싶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이미 짐을 꾸렸습니다. 남해안 섬으로의 탈출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 섬에 있는 시인의 ‘섬집’에서 한 며칠 머물 일정입니다. 낚싯대와 새로 읽기 시작한 이강제 선생의 소설 ‘진주’가 전부지만, 인생 친구와 떠나는 둘만의 여행입니다. 우리는 물때에 맞춰 방파제에 의자를 놓고 앉아 갑오징어 몇 마리쯤 건지길 바랍니다.

밤이 오면 모든 별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별을 헤아리는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억눌린 감정을 모두 풀어주며 다시 오랫동안 엄격한 시간을 보낸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절은 4월로 5월로 넘어갑니다. 하늘을 보든 바다를 보든 크게 호흡을 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 나는 자유롭다고! 코로나 19로 잃어버리는 것이 많지만 얻는 것 역시 많을 것이라고! 나는 행복하다고, 우울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코로나 블루가 우울의 뜻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낸 사람의 희망을 상징하는 색, 블루이길 기대하며.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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