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것이 일상의 새로운 풍경이 되었다. 마스크가 또 하나의 생필품이 되면서, 필자에게는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호흡해야 하는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처럼 위중한 시국에 무슨 실없는 소리냐고 질타할 독자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 오히려 그간 너무나 당연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낯설고 새롭게 성찰해볼 계기를 주기도 한다.
인간은 숨을 쉬어야 산다. 맥박이나 체온, 신진대사처럼 호흡 역시 가장 기본적인 생명현상이다. “인생이란 한 번 호흡하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하신 석가모니의 말씀처럼, 호흡은 살아 있는 매 순간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쉼 없이 이루어진다.
삶의 한순간도 중단할 수 없는 호흡의 유무는 자연스럽게 고대 여러 문명에서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인은 “코 위의 들숨과 날숨”을 삶과 죽음을 구별 짓는 기준으로 삼았다. 아울러 그들은 인간계를 대표하는 파라오에게 신들이 “앙크” 즉 “생명”을 선물한다고 믿었는데, 신전 부조에서는 이것이 신들이 생명을 상징하는 고리 달린 십자가를 그의 코에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천상계의 신들이 절대 권력의 화신을 통해 지상의 인간에게 부여하는 삶이라는 선물이 본질적으로 “생명의 숨결”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신(들)이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은 고대 서아시아와 지중해 전역에서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신을 닮은 인간 형상을 만들자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그 콧구멍으로 나비(프쉬케) 한 마리를 날려 보내 인간에게 마음(프쉬케)이 깃들게 했다고 전한다. 데워진 공기의 흐름에 제 몸을 맡겨 존재와 무존재를 오가는 디지털 운동을 하는 나비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숨결과 비물질적인 영혼을 체화한 곤충이다. 히브리 성경 ‘창세기’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니쉬맛 하임” 즉 “생명의 숨” 또는 “생기”를 코로 불어넣어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대인 접촉을 피하는 것만이 코로나19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현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권장하거나 강제한다. 그 결과 우리는 비대면 소통만이 가능한 자발적인 고립 상태를 유지하거나 코와 입을 꽁꽁 싸맨 채 외출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보다 상황이 심각한 나라들의 경우, 강제적 외출금지로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하고 병원은 초만원, 미처 처리되지 못한 시신들이 쌓여 방치된 종말론적 풍경마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생명 활동의 근간인 호흡이 위협받고 사회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 간 접촉이 단절되면서 우리 일상은 엉클어지고 계획은 이지러졌으며 살림은 쪼그라들었고 자신감은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코로나19의 역설”이라는 현상이다. 역병으로 인류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지구 환경과 생태계가 회복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이 멈추고 상가가 문을 닫으면서 물은 더 깨끗해지고 공기는 더 맑아졌다. 산업과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서 가장 뚜렷한 개선세를 보인 것은 대기의 질이다. 최근 인도 북부 펀자브(Punjab)주에서는 봉쇄령 이후 미세먼지가 사라져 160㎞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몸을 움츠리자 지구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감히 말하건대,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최악의 전염병으로 기록될 유행병이 지구가 스스로 생명의 숨결을 되찾는 데 기여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필명일 것이 분명한 작가 ‘무스타파 달렙(Mustapha Dahleb)’이 쓴 글이 지금 널리 퍼지고 있다. 작가는 “우리는 곧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 ‘약함’과 ‘연대성’이란 단어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성찰한다. 인류는 이번 위기 역시 이겨낼 것이다. 벌써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고 수많은 이가 직업을 잃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뼈아픈 교훈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역설”로 인해 전염병이 물러갔을 때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다시 정신없이 뛸 준비를 하기 전에 자문해야 할 고민이 더 생겼다. 일상이 멈춘 지금, 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지금,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생각해볼 일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 작은 행성의 숨통을 막기 시작했을까? 지구와 우리가 함께 숨 쉴 수는 없을까?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he, 1844~1900)가 갈파했던 ‘대지의 피부병’이라는 오명을 우리는 언제쯤 벗어 던질 수 있을까?”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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