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치렀다. 역대 가장 긴 투표용지를 받았다. 언제 생겨났는지 모를 수많은 정당만큼 선거 국면에 다양한 시민의 삶이 드러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책과 의제가 사라졌다. 프로 스포츠의 FA시장을 방불케 하듯 각 정당이 출마자를 주고받는 모습, 각자 상반된 것만을 주장할 뿐 협치가 사라진 정치, 숫자놀음에 정신 팔린 정치인들에게 시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총선이 끝났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국회 과반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얻었고 부산은 정반대의 결과를 맞았다. 하지만 전국이 파란색인 것도 부산이 분홍색인 것도 모두 기쁘지 않았다.

21대 국회 또한 거대 양당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양당의 색만 진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하자고 합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삶의 형태가 다양하고,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에 세상은 무지갯빛일 수밖에 없을 텐데, 항상 무언가에 의해 다양한 사람의 삶에 대한 존중은 뒷순위로 밀려난다.

제도가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되는 것, 소수가 정책에서 소외당하지 않게 하는 것, 사회적 합의의 양면성으로 소수를 배제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지갯빛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또다시 최소 4년 후로 미뤄진 것이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로 공론의 장도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확인하는 장, 토론하는 장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상이 무너져도,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우리 사회를 휘감아도, 정치가 무엇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이상한 상황이 선거 국면을 뒤덮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디라도 나가서 외치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할 수 있는 것은 단절된 사회에서 스스로 고립되거나, 어떻게서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거나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줄어들고 있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다. 올해 세웠던 계획이 모두 틀어지고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의 삶에 대한 한탄을 듣는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가담한 26만 명이라는 숫자가 전국 택시 수와 비슷해 불안하다는 여성의 이야기를 듣는다. 선거 국면에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으로 치부당하고 사과도 받지 못한 성소수자에게 이제는 부정당하는 것도 익숙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다수라는 말에 가려진 개인들이 큰 기대 없이, 불안한 미래 앞에서 일상을 버티고 있다.

곧 21대 국회가 들어선다. 선거 결과가 아쉽고 이전의 상황을 참고했을 때 큰 기대를 하면 실망이 커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180석, 개헌 빼고는 단독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석이다. 그렇기에 권한을 얻은 여당이 꼭 새로운 시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촛불 이후에 많은 사람이 변화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의 삶이 담길 수 있는 국회, 이전과 다른 국회를 통해 다른 사회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남겨본다.

얼마 전 청년 몇 명이 SNS로 시작한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캠페인에 시민 후원금 500만 원이 3일 만에 모였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활동가들에게 떡볶이를 보내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후원 캠페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캠페인이 과연 몇 명에게 떡볶이를 전달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지켜보는 중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사회적 고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대면활동 없이 공론의 장, 숙의의 장을 만들기 위한 청년들의 모임이 열린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이런 시도들이 참 소중하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작은 기대라도 가질 수 있는 소소한 변화, 작은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도가 꼭 정치의 영역까지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심오한연구소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