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왜장들은 그 난리 중에도 조선 사기장을 회유하거나 납치해 30여 명을 데려가 규슈지역에 배치하여 낙후된 일본 도자산업을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610년대 규슈지역 도자산업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피랍 조선 사기장들에 의해 기술은 확보되었으나 질 좋은 백토를 발굴·개발하는 난제에 부딪혔다. 왜군이 남해안에 주둔해 있었을 때 울산 기장 양산 김해 진주 등의 민간요(가마)에서는 이미 훌륭한 백자가 생산되고 있었다. 왜장들은 조선백자를 탐내어 도공들을 납치해갔다. 그러나 규슈에는 좋은 백토가 없었다.

당시 규슈 히젠(肥前)지역의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에게 잡혀간 조선 도공 이삼평은 1618년 아리타에서 도석질 원석을 분쇄 가공해 백토를 생산했지만, 조선산 백토보다 질이 많이 떨어졌다. 이 상황을 간파한, 사업 수완이 뛰어난 대마번주 소우 요시나리는 질 좋은 조선 백토를 규슈지역에 공급하는 통로를 만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터에 절호의 찬스가 왔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다.

요시나리는 중국이 명·청 분쟁으로 임진왜란 때처럼 조선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약점을 노리고 부산왜관에서 자주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그 한 예가 조선의 기록인 ‘왜인구청등록’ 1637년 12월 6일 조에 부산포 첨사 정원일이 동래부사 정량필 앞으로 역마를 달려 급보한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조선 조정은 부산이라는 변방에 다시 왜군이 침략해오면 걷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임시방편으로 대마번의 요구를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마번은 기회를 틈타 부산왜관에 가마를 짓고, 백토와 장작을 무상으로 공급받아 도자기를 만들어 가는 유례가 드문 어처구니없는 외교관계를 성립시켰다. 왜인은 인조 17년 1639년 8월 16일께 두모포왜관에 요를 만들고, 경상도 하동군 옥종면과 사천군 곤양면의 백토를 요구했다. 이후 숙종 24년 1698년까지 두모포왜관요와 초량왜관요에 지급된 조선 백토의 총수량은 2075ｔ으로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 백토로 사발을 제작하려면 초량왜관 전체가 10기 이상의 요와 시설로 꽉 채워져야 했다.

그러나 초량왜관에는 가마가 1기밖에 없어 왜관에 들어온 백토 대부분을 대마번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는 조선의 문헌 기록과 당시 일본 채색자기의 유럽 수출 및 규슈지역 도자산업 정황을 토대로 한 필자의 연구 결과다.

1678년 두모포왜관이 협소하다는 핑계로 대마번은 초량으로 왜관을 옮겼다. 이때 두모포왜관에 있었던 요를 초량왜관으로 옮겨 간다. 필자는 두모포왜관 안에 있었던 요를 ‘두모포왜관요’, 용두산공원 일대에 걸쳐 있었던 왜관 안의 요를 ‘초량왜관요’라고 호칭한다. 왜냐하면 조선의 대왜 관계를 주도했던 예조 전객사(典客司)의 대표적 기록인 ‘변예집요’ ‘왜인구청등록’에서 일본은 언제나 ‘왜’로 기록했으며, 왜인이 거주하던 곳을 왜관이라 기록하고 호칭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관 안에서 왜인이 운영하던 요를 ‘왜관요’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당시 부산지역에는 조선 민간인이 운영한 요가 산록에 분포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1930년께 초등학교 교사였던 화가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저서 ‘부산요·대주요’에서 왜관요를 ‘부산요’라 호칭했다. 그때 부산은 ‘일본제국의 부산부’였으니 왜관 안에 있던 왜관요를 그들 관점에서 ‘부산요’로 둔갑시킨 것이다. 1986년 일본 관서대 교수 이즈미 죠이치는 저서 ‘부산요의 사적 연구’에서 때로는 ‘왜관요’라 기록하면서도 노리타카가 사용한 명칭을 이어받아 ‘부산요’라는 주로 명칭을 썼다. 그러나 일본 도자사 학자들 저서에는 대부분 ‘왜관요’로 돼 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그때 광복동거리는 변천정(辨天町·벤텐마치)이라 불렀다. 나라를 빼앗긴 것만도 방성대곡할 일이었지만, 그때 우리 산하와 민족은 고유의 이름마저 일본말로 부르고 이름도 창씨개명해야 하는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겪었다. 처녀들은 위안부로, 청년들은 일본 신민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징용과 학도병으로 끌려가 일장기 깃발 아래서 무참히 희생됐다.

요즘 부산 문화계 일각에서 왜관 내 만들어진 ‘왜관요’를 일본인 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 거부감 없는 ‘부산요’라 부르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저 요원한 신라 시대 망부석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일본에 의해 풍전등화처럼 꺼질 듯 그 운명이 얼마나 흔들려 왔는가? 일제강점기에 희생된 선열의 회한 어린 절규를 흘려보낼 수 없다.

우리 땅 독도를 끝까지 다케시마로 부르는 일본인처럼 우리가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를 수 없듯이 왜관요를 식민사관적 입장에서 부산요로 부르는 것은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경성대 공예과 교수·㈔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