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우리나라의 독서율과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폭넓은 보급이나 다른 콘텐츠의 증가가 이런 현상의 이유라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그런데 그렇게 독서가 아닌 다른 콘텐츠를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이유 자체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란,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운 시대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은 외롭다. 물론, 때로 누군가에게 책은 가장 깊은 위로를 주고, 가장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움이 일상이 되고, 그만큼 자극적인 소통이 흔해진 시대에서, 홀로 고요히 몰두하며 활자 속을 거니는 일은 더 깊은 외로움을 불러오곤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책이 그렇게 팔리지 않는다는 시대에도, 왜 책값의 몇 배나 하는 돈을 내면서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젊은이는 늘어나는지 이해될 법도 하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오프라인 모임은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고, 심지어 집에서 홀로 즐기는 콘텐츠도 점점 더 쌍방향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가능하면, 강렬하게 연결된 감각을 주는 영상, 실시간 소통, 라이브를 통한 쌍방향적인 콘텐츠가 더 중독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에 반해, 가만히 혼자서 고요하게 몇 시간을 몰두해야 하는 ‘책 읽기’란 심심하거나 재미없다는 차원보다는, 그 순간을 견뎌내기에는 너무 외롭고 허전하다는 감각이 더 앞서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이십 대 시절, 나도 방에 책을 탑처럼 쌓아놓고 읽기를 좋아했지만, 그러면서도 책 읽기라는 것이 외로운 일이라고 종종 느꼈던 듯하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더라도, 종일토록 집 안에서 혼자 책만 읽는 일은 확실히 외로운 데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도서관이나 카페를 찾아가서 사람 사이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주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내게 보다 더 활동적인 만남이 있는 그런 취미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또는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곤 했던 것이다.

어떤 시절에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시절에 책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고요하고 싶을 때 읽는 릴케의 서한집 한 권, 몽테뉴의 에세이, 필립 로스의 소설을 생각하면, 역시 책만큼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고독이 일상이고, 당장 살을 맞대고 눈빛을 교환할 ‘곁’의 누군가가 간절하고, 길에서 깔깔대는 사람들을 넌지시 바라보며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고, 삶이 끊임없는 의무들로 점철되어 정신없이 진행되어 나갈 때는, 역시, 책을 읽는 일이란 더 외로워서 견딜 수 없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럴 땐, 그저 전(全) 감각적으로 그런 기분을 계속하여 잃게 해줄 자극을 찾게 된다. 외로울수록 차분한 고요보다는 번쩍거리고 손쉽게 몰입가능한 영상, SNS나 익명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실시간 소통을 더 찾게 된다. 그렇게 우리네 보편적인 삶이란, 안정된 마음으로 책을 읽기보다는, 불안과 외로움에 쫓기며 겨우 오늘 하루 나를 달래고 마감해야만 하는 것에 더 가까워지고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책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란, 그렇기에 사실은 무척 운이 좋고 복받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그저 이틀 내내 평온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도 좋은 주말을 지니는 일이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일지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시절을 내가 지닐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그렇게 책을 마음껏 사랑하기만 할 수 있는 시절이 쉽게 오지 않을 것임을 예감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 나의 꿈이랄 게 있다면, 그저 어느 주말, 어느 휴가, 어느 밤에 내가 그렇게 책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다시 만나는 날일 것이다. 그런 날들을 누리고 있다면, 아마 나는 잘 살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책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란, 그렇게 나의 잘삶을 증명하는 일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날을 다시 만나길 기다린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