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류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지속해서 치명적인 전염병의 대유행에 고통받았다. 2세기 후반 유럽에서 천연두 또는 홍역으로 추정되는 역병으로 500만 명이 사망한 데 이어 ▷6세기 중반 유스티니아누스 비잔틴 황제 시절 지중해 전역의 페스트로 2500만~5000만 명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의 페스트로 2억 명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세기 말부터는 호흡기로 전염되는 각종 인플루엔자와 조류인플루엔자·사스·메르스·코로나19가 창궐하는 추세다. 근래에는 감염병 유행 주기가 5~10년으로 더 짧아지고 있다.

인류의 의학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전염병은 왜 더 자주 발생하고 갈수록 강력해질까. 1796년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해 각종 바이러스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의 시대를 열었다. 1928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항생제 개발은 각종 세균으로 인한 전염병과 급성질환으로부터 우리를 구했다. 그러나 인류가 한숨 돌리기도 전에 새로운 각종 바이러스와 슈퍼박테리아가 인류를 위협 중이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진화를 인류의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거의 모든 인간의 전염병은 동물에서 왔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후손의 생존을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여 치사율과 전염력을 최적화해왔다. 감염자가 빨리 사망해 전염력을 너무 낮추지 못하도록 치사율을 적절히 낮추는 한편 인간의 면역체계에 전멸당하지 않도록 전투력을 적당히 높여 왔다. 인간은 각종 치료로 인해 치사율이 너무 높지 않고 전파력을 보장해주는 접촉·교류에 기반한 문명 때문에 각종 전염병이 동물보다 인간에게서 더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점에서 코로19 바이러스는 최우등생인 셈이다.

전염병은 인간의 면역체계에만 최적화하여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문명이나 사회·경제 체계에도 최적으로 적응해왔다. 인류의 사회·경제활동은 직간접적인 물리적 접촉을 통해 발전했다. 바이러스에게는 전염을 확산할 절호의 기회이자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렇게 전 지구를 초토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 접촉과 교류에 기반한 인류문명이 가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법은 바이러스의 전투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인간의 면역능력을 진화시키거나 치료약·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바이러스의 변신·진화 속도에 비해 너무 늦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수단은 강력한 사회적 격리이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속성상 거리두기를 장기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바이러스도 잘 알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곧 인류 문명과의 대결이 된 셈이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문명을 크게 바꾸었다. 중세 페스트는 노동력을 급격하게 감소시켜 저렴한 임금의 농노에 의존하던 봉건제도가 붕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근대 자본주의의 기틀인 기계화에 의한 대량생산과 산업혁명·화폐경제·교역이 본격화됐다. 천연두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는 남미의 고대 제국을 맥없이 무너뜨렸다. 점령군이 약탈한 막대한 금과 은은 유럽으로 유입돼 화폐 경제와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스페인 독감으로 1차 세계대전이 중단되고 미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돈을 풀었다. 폭등하던 물가와 주식이 한순간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찾아왔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물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뿌리는 ‘양적 완화’의 후유증이 걱정되는 이유다.

더 큰 우려는 장기간의 사회적 격리와 국가 간 이동제한이 인류의 생활방식이나 사회·경제활동은 물론 정치·교육·종교·문화의 질서와 문명발전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투력을 높일 백신과 치료약이 빨리 개발돼야 그 불확실성을 다소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과학의 힘을 믿고 싶을 뿐이다.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