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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어느 멋진 날의 와인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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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4-08 19:47:2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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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승리를 이끈 윈스턴 처칠. 뛰어난 전략가이자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그는 2차 세계대전 고난의 시절과 승전의 기쁜 순간에 샴페인을 즐겨 마셨다. 그가 즐겼던 샴페인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공급되는 공식 샴페인으로 2004년 지정됐고, 2011년 4월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 샴페인으로 특별 주문되며 다시 한번 영국 왕실이 선택한 최고의 샴페인이 되었다.
베를린 테겔호수에서 ‘어느 멋진 날’을 보내는 연인.
1613년부터 300여 년간 러시아를 통치하며 발트해·흑해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노프 왕가의 알렉산드르 2세는 부친 니콜라이 1세가 크림 전쟁 중 사망한 뒤 황제에 올랐다. 열강의 압박과 패전 속에 러시아 개혁의 필요를 느낀 그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사회 각 분야를 혁신해 러시아제국 근대화를 이끌었다. 그는 생애 고통과 영광의 순간마다 황제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샴페인을 주문해 마셨다고 한다. 비록 개혁에 따른 갈등으로 1881년 3월 혁명세력의 폭탄 테러로 사망한 비운의 황제가 됐지만, 그가 마셨던 샴페인은 현재 세계 최고 샴페인으로 명성을 유지한다.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나폴레옹 역시 와인 애호가로 잘 알려졌다. 그는 70여 차례 치른 크고 작은 전투 때마다 와인을 담은 술통을 가지고 다녔다. 마지막 싸움인 워털루 전투의 패인도 전날 와인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질 정도이니 나폴레옹에게 와인은 위로와 힘이 됐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그 멋진 날을 기념하는 와인 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돼 생을 마칠 때까지 결국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즐겨 마셨던 와인은 그 지역만의 완벽한 아로마와 부케를 지닌 와인으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입맛을 사로잡아 ‘왕들의 포도주’로 알려진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도 멋진 날과 잘 어울린다. 루이 14세는 사랑하는 퐁파두르 부인에게 토카이 와인을 선물하며 ‘포도주의 왕, 신들의 음료’라고 했으며 그중 최고 등급인 로열 에센시아를 죽어가는 사람에게 ‘천국의 느낌을 미리 맛보라’며 한 모금씩 주기도 했다.

뉴욕 배경인 ‘어느 멋진 날’은 부드럽고 따뜻한 싱글 대디 역을 맡은 조지 클루니의 젊은 시절 모습과 매력적이고 억척스러운 싱글 맘 건축사 미셸 파이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자신의 일’ ‘자녀 양육’ 모두를 잘하기 위해 분투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인생은 살 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어느 멋진 날’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세 유럽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프랑스 보르도 와인부터 최근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와인까지 수많은 와인이 당신의 ‘어느 멋진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황제와 신들의 와인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모두 얻은 마음으로 와인 한 잔 마셔보자. 내 인생의 ‘어느 멋진 날’을 꿈꾸며.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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