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 사태, 2008년 금융위기 등 10년, 20년 단위로 큰 위기를 겪어 봤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한 국가나 지역 내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한 번도 겪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했다.

한국의 해운산업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중국의 생산 정체가 유발한 공급 부족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선언된 이후에는 전 세계적인 판도의 소비 감소로 인하여 이중의 고난을 겪고 있다.

일본 해사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2월 아시아발 북미 수출항로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동월 대비 9% 감소한 120만 TEU를 기록했다. 올해 1월의 아시아발 유럽 수출항로에서는 물동량이 4% 감소한 154만 TEU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시아 18개 나라의 북미 수출항로의 2월 컨테이너 화물량은 5개월 연속으로 감소해 지난해 3월 이후 최저 수준에 그쳤다. 이때까지는 중국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산 감소가 원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 수요 감소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진다.

3월,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대공황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무제한 양적 완화, 우리 대통령이 100조 원 기업펀드 조성을 선언하는 등 많은 나라에서 비상한 경제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제주체의 개별적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은 불가피해 보인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해운산업 역시 재정과 금융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해운산업의 중장기적 전망, 우리 해운업계의 국제 경쟁력, 항로별·선종별 공급과 수요, 개별 기업의 부실 여부 등을 면밀히 분석해서 투자의 필요성과 효율성을 고려한 전략적 기술적 지원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신속하고 과감한 접근법과 실천 또한 중요할 것이다.

세계적 판도의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해운업계에 유례 없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가 늘기 위해서는 해운산업의 중장기적 전망이 우선 중요하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세계 해운산업은 그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장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기세가 급전직하로 추락하면서 해운 위기가 초래됐다.

외형상으로는 금융위기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실한 해운 경기 분석에 따른 선복 과잉이 바로 문제였다. 그 이후로 이뤄진, 선복량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운크타드·UNCTAD) 통계자료에 따르면, 세계 해상교역 규모는 2009년 약 80억ｔ 정도에서 2018년 약 110억ｔ으로 28% 정도 성장했다.

반면, 세계 상선대 규모는 재화중량톤수(dwt) 기준으로 2009년 약 10억ｔ에서 2019년 19억8000만ｔ으로 약 90% 이상 증가했다. 선복 과잉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정부와 해운 관련 기관이 2, 3년 내 해운 경기가 회복된다는 전망을 지난 10여 년간 계속 반복해왔다는 점은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2016년 한진해운 사태 당시 문제가 되었던 점 중 하나가 한진해운 부실의 원인이 ‘해운 경기 부진에 따른 일시적 자금 부족인지, 한진해운 자체가 한계기업인지’의 판단이었다.

지난달 흥아해운 워크아웃 신청이 있기까지 우리 해운업계는 지나치게 정부 정책에 의존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정확한 경기 전망, 기업 진단, 경영전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정책과 금융지원이 한계기업의 수명만 연장할 뿐이며 건강하게 관리되는 기업의 경쟁력까지 하락시키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건강한 기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해운산업 위기는 반복된다. 대한민국에서 해운산업은 생명줄과도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에 대처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모든 정책역량을 단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기왕 이러한 노력을 하려면, 이번 지원이 발판이 되어 100년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고, 규모가 아닌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거듭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1970년대 J.P. 모건 이래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금융은 냉정한 분석과 비판에 바탕을 두기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런 금융의 잣대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해운정책에도 금융의 잣대를 도구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