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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 시대의 원초적 장면 /김성환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23 19:36:4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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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상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치료하다 그의 기억 속 한 장면에 주목했다. 그 환자는 어린 시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고 그 때문에 지금의 정신 상태에 이른 것이라 프로이트는 진단 내렸다. 그 장면이 실제였는지 착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상태의 원인이 되는 심연의 한 지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프로이트는 이 지점을 원초적 장면이라 불렀다. 내면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원초적 장면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겪는다. 쌍둥이라도 각기 다른 내면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어오며 나는 지금의 혼란과 두려움이 우리 시대의 원초적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래의 사건들 중 훗날 ‘나는 봤노라’ 할 만한 것이 몇몇 있다. 9·11, 2002 월드컵, 촛불혁명 등등. 그러나 그런 사건도 지금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우리 삶은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바뀌지 않을까 짐작한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언젠가는 부정적인 사태의 원초적 장면으로 떠올릴 것이라는 불안이 생긴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겪지 못할 일을 일상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터진 혐오와 차별의 발언이 그렇다.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을 멸시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온 세상에 퍼졌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된 듯하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가짜뉴스도 넘쳐난다. 잇속을 챙기려 그랬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되는데, 재미삼아, 관심을 끌려고 그랬다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타인의 비극 앞에서 그런 재미를 찾을 수 있다니 기가 찬다.

일상의 충격은 말 그대로 세계적이다. 나라마다 국경을 안팎으로 걸어 잠그고 공항이 일순간 멈춰버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세계대전 때와도 다르게 지금은 아군도 동맹도 없는 고립의 순간이다. 받아줄 항구가 없어 환자를 태운 채 공해를 떠도는 유람선이란 영화에서나 나올 줄 알았는데, 지금 눈앞의 현실이 됐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은 이 비극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장애인 시설의 집단 감염 소식에 놀랐던 것은 감염자 수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처지였다. 감염 자체도 참담하거니와, 20년간 병원에 유폐되었다 끝내 숨졌단 소식에 가슴이 먹먹했다. 바이러스는 노인,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같이 약자의 삶부터 파괴하는 모양이다. 병이 아니라 실직 때문에 삶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사회적 약자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온 나라에 엄습한 비극으로 체험할 줄 생각지 못했다.

물론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그만큼 많다. 목숨을 걸고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 자기 처지를 생각지 않고 타인을 도운 선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우리가 여전히 같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난 속에서도 우리 삶이 중단되지 않는 것은 이런 마음들 덕분이다. 그래도 코로나 이후 우리 삶의 풍경은 달라질 것이다. 개학이 미뤄진 여파는 생각보다 길 것이고, 식당도 교회도 전과 달라지지 않을까. 난생처음 해보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나라처럼 밀접한 관계가 중시되는 나라에서는 너무 낯설고 난처하다. 한 번 멀어진 거리를 회복할 수 있을까? 개방과 관용의 정신으로 맺어진 유럽의 솅겐 조약 정신이 폐쇄된 국경 앞에서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일상은 회복되겠지만, 과거와 똑같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혼란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병증이 되지 않고 영혼을 잠식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겪은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힘들었던 과거를 덮어두고 잊으려 하기보다 계속해서 이야기함으로써 그날의 상처와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환자를 치료했던 것처럼 말이다. 제언컨대, 곧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모든 경과를 진지하고 상세한 기록으로 남기기를 기대한다. 백서니 청서니 하는 형식적인 것은 진실을 담지 못할 것 같다. 그 대신 각자가 겪은 일에 관해 위로받듯, 치유하듯 서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다. 아픈 기억과 담대하게 마주할 때 이 상처가 개인과 사회의 흉터로 남지 않을 것이다.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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