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아시정구지의 추억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18 20:07:01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예전에, 이게 그러니까 언제 시작이 됐는지도, 언제 자취를 감췄는지도 모르는 까닭에 그냥 예전에. 김해 토박이 어르신들 사이에는 ‘정구지계(契)’라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사촌하고도 안 농갈라 묵는다’는 아시정구지 무침.
계(契)라고 하니까 부추(정구지)를 재배하는 사람들끼리의 협업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닙니다. 초봄이 되면 자연에서 재배되는 정구지가 나기 시작합니다. 첫물 또는 초벌을 경상도 사투리로 ‘아시’라고 합니다. 자연의 시간이란 게 묘해, 같은 김해라도 아시정구지가 나는 시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한림, 주촌, 진례, 대저, 장유 등등 동네마다 약간 시차를 두고 아시정구지가 수확되었다고 합니다. 계원들은 아시정구지가 나오는 때를 경험으로 압니다. 그럼 돼지고기 몇 근 삶고, 막걸리 몇 말 지고 정구지 밭으로 향합니다. 밭에서 바로 뽑아 간단한 양념으로 정구지를 무칩니다. 그걸 돼지고기 수육에 곁들여 막걸리와 함께 먹습니다. 이런 식으로 며칠 간격으로 김해를 한 바퀴 돕니다. 그렇게 봄을 맞고, 그렇게 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풍류가 아니겠습니까.

정구지계가 단순히 호사가들의 풍류에 그쳤다면 솔깃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시정구지가 날 때를 맞춰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됩니다. 정구지계에는 지역 유지들이 십시일반 해서 농번기를 앞둔 농민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겨우내 생명을 보듬고 있다 봄기운을 머금고 자란 정구지에, 내 동네에서 얻은 돼지고기와 내 동네에서 빚은 막걸리만 한 궁합이 또 있을까요? 더군다나 아시정구지는 말입니다. ‘사촌하고도 안 농갈라 묵는다’ ‘아시정구지는 사위 안 주고 서방 준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맛과 효능이 각별하다고 합니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김해에 정구지계의 전통이 남아 있는지 수소문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전통이, 이렇게 기막힌 풍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몇몇이 작당을 했습니다. 어느 해 봄, 김해에서 ‘정구지계’를 한번 부활시켜 보기로 했습니다.

김해 곳곳에서 부추가 나고 부추작목반도 있지만, 한림면에서 나는 노지 정구지를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한림면 농가를 수소문해 아시정구지를 넉넉히 뽑아 왔습니다. 거기에 갓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곁들였습니다. 정구지가 거기서 거기지 했다가 한방 크게 얻어맞았습니다. 아삭하되 질겅거리지 않는 식감, 대지의 향을 옴팡지게 쓸어 담은 듯 강렬한 향, 게다가 어지간한 고추냉이에 견줘도 좋을 알싸한 매운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향과 매운맛이 어찌나 오래가던지 종일 봄기운에 취해 있었습니다.

제게 정구지계 이야기를 전해주고 아시정구지 맛을 알게 해줬던 이는 서면 어느 골목에서 ‘바보주막’을 운영했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희철 대표님입니다.

“희철 선배, 어떻게 아시정구지에 막걸리 한 사발 하셨는지요?” 다시금 봄입니다. 맛 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바이든 취임식, 불참하는 트럼프 핵가방 전달 방법 관심
  2. 2“실거주 허용 믿고 샀는데…” 레지던스 단속 예고에 집단반발
  3. 3오죽했으면 대출받을까…거인 최악 ‘보릿고개’
  4. 4국밥보다 뜨거운 상생정신…‘코로나 한파’ 녹이다
  5. 5“3000피 찬물” vs “과열 예방 필요”…공매도 찬반 ‘증시 블랙홀’
  6. 6콧대 높던 유명식당도, 특급호텔도 ‘배달·포장 전쟁’ 가세
  7. 7봉래산 전설 할매바위에 강철 쾅 쾅…영도 상징 훼손 논란
  8. 8문재인 대통령, 이르면 20일 3차 개각…문성혁 등 4~5개 부처 바꿀 듯
  9. 9폐쇄명령 풀린 세계로교회…“인원제한 지침 법정싸움 계속”
  10. 10오늘의 운세- 2021년 1월 20일(음력 12월 8일)
  1. 1지역 청년 사업가 300명, 이진복 지지 선언
  2. 2여당 내달 2일 예비후보 언택트 국민 면접
  3. 3문재인 대통령, 이르면 20일 3차 개각…문성혁 등 4~5개 부처 바꿀 듯
  4. 4 문재인 대통령 ‘123분 신년회견’에 지역은 없었다 /정유선
  5. 5예비경선 20% 반영…야당 2만2800명 책임당원 표심 주목
  6. 61000원짜리 식당·펫 공원…박형준 생활 공약 발표
  7. 7 자격론에 반박한 박형준 “부산 확장성이 먼저다”
  8. 8독자 브랜드화 나선 박성훈, 맞장토론 하자는 전성하
  9. 9박인영의 부산사람론 “서울말 쓰는 시장 필요 없다”
  10. 10"이명박·박근혜 사면, 말할 때 아냐…백신접종 부작용 정부 책임”
  1. 1“포스트 코로나 금융 도약 준비, 뉴딜 특화 정책자금 신설 추진”
  2. 2 동원개발②
  3. 340년간 월세내듯…청년 주담대 상품 나온다
  4. 4“3000피 찬물” vs “과열 예방 필요”…공매도 찬반 ‘증시 블랙홀’
  5. 5KDI, 한국 CPTPP(포괄·점진적 환태평양경제협정) 조속 가입 주장
  6. 6주가지수- 2021년 1월 19일
  7. 7"가덕특별법 땐 공항계획에 담겠다"
  8. 8부산 공공기관 올해 최소 679명 채용…첫 스타트는 BPA
  9. 9한진CY 개발안 3수 도전…기여금 3500억대 달할 듯
  10. 10“부산신항 터미널 운영사 7개→ 4개로”…단계적 통합으로 환적 경쟁력 키운다
  1. 1세월호 수사 외압·유가족 사찰 등 대부분 무혐의
  2. 2 마창진 통합의 교훈
  3. 3경남도, 경남 가야시대 유적지 발굴·학술조사 지원
  4. 4양산 황산어린이공원 주차장 언제 첫 삽 뜰까
  5. 5밀양 얼음골사과·쌀 TV홈쇼핑 데뷔
  6. 6울산 태화강역 ‘수소 복합허브’ 뜬다
  7. 7오늘의 날씨- 2021년 1월 20일
  8. 8부산~양산~김해 국지도 60호선 양산구간 노선 사실상 확정
  9. 9인건비 착복에 수거 거부…쓰레기가 집 앞에 쌓여간다
  10. 10부산외대·동서대 해외취업 전국 1·2위
  1. 1오죽했으면 대출받을까…거인 최악 ‘보릿고개’
  2. 2롯데 책임질 외인 3인방 입국
  3. 3kt 양홍석·김영환, 랜선 경연도 독식
  4. 4부상 투혼 BNK 진안 ‘더블더블’
  5. 5최대규모 LPGA 21일 시즌 ‘티오프’
  6. 6민병헌 갑작스레 수술대로…롯데 외야진 재편 불가피
  7. 7손흥민 EPL 100호 공격포인트…아시아 선수 최초
  8. 8아이파크 공격수 박정인 영입
  9. 9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재선 성공
  10. 10‘원톱’ 황의조 시즌 3호 골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진보당 노정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국민의힘 이언주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축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
탈산업화시대 연착륙을 위한 필수조건
기고 [전체보기]
수소경제가 답이다 /이수태
건강이 최고다 /이상주
기자수첩 [전체보기]
문재인 대통령 ‘123분 신년회견’에 지역은 없었다 /정유선
비판에 귀 닫은 부산교육청…이 기사도 감출건가요? /김화영
김석환 칼럼 [전체보기]
‘능력주의’와 ‘예타만능’이라는 거짓말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해 뜨는 아침, 겨울 산의 속살을 보라
정치적이기엔 너무도 문명적인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관현맹인과 여악의 전통
동래부동헌에 풍악이 울리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1류 국민, 3류 행정
‘시수’와 끈기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불로초 감귤
북어보푸라기
사설 [전체보기]
6차 공항계획 반영 위한 가덕특별법 통과 서둘러라
국내 코로나 1년, ‘K방역’ 공과 되짚어 종식 앞당기자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공유경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원격의료 도입의 조건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되나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이홍 칼럼 [전체보기]
카리스마에 대한 오해
독성 리더십
장병윤 칼럼 [전체보기]
알바트로스, 오 알바트로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서울에서 멀어지면 불안한 나라
코로나 봉쇄령 속에 맞은 연말연시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불멸의 연인
연말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겨울나기
메리 크리스마스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 코로나 병상 부족 현실화…생활치료센터 설치 힘 모아야 /고광욱
우리의 희생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빈센트 커트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홍도의 ‘논을 가는 소’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