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무래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겠다. 비단 영화계뿐만 아니라 생경한 분야에서까지 그의 이름을 빌리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영화 ‘기생충’의 성취는 세계적이었기에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가 골든 글로브상의 수상소감에서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우리는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쓴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게, 이제는 모든 글이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최근 영화계의 성취는 그뿐 아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최고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얼마 전 김용훈 감독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했다. 잇따르는 한국 영화의 크고 작은 성취를 보며 내가 그동안 무엇을 고민해왔고 유념하고 있었는지를 잊고 멍 때리게 된다.

어쩌다 보니 부산에서 독립예술영화를 배급하는 일을 삼 년째 업으로 삼고 있지만, 재미있게도 나는 천문우주과학으로 학사를 졸업했다.

다들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별 볼일보다 물리를 할 일이 더 많았지만, 그때는 정말 우주 연구라는 분야에 흥미를 가졌다. 물리, 수학 등과 함께 기초과학에 속하는 천문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취업률이 낮아 인기 있는 과가 아니었는데, 그 흔한 교직 이수마저 되지 않아서 ‘제대했더니 학과가 없어졌더라’는 말은 적어도 우리에겐 농담이 아니었다.

그런 현실을 상징하듯, 나와 동기들은 여름에도 입김이 나오는 건물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오래된 기억을 반추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독립영화가 꼭 영화의 기초과학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초학문은 꼭 어딘가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실재를 탐구하는 자체로서 존재한다. 독립예술영화도 꼭 다수의 기호에 맞춰서 제작되는 영화의 종류는 아니다. 오히려 상업시장에서 자본의 존재로 인해 하기 힘든 실험과 시도가 가능한 하나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자본의 도움으로 가능한 실험도 있다).

자본의 필요나 기호에서 ‘독립’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독립예술영화이다. 기초과학이 전체 과학계에 깊이의 볼륨을 더하듯 독립영화 역시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유지하는 다양성의 볼륨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생각할 때 기초과학과 독립영화의 위치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노벨상 시즌만 다가오면 습관적으로 반성하는 한국 과학계와 달리 점점 더 힘겨워지는 한국 독립예술영화 시장 상황 속에서도 전체 영화계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꾸준히 등장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러한 ‘스타’들이 전체 영화의 흥행을 견인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지금도 ‘기생충’을 두고, 경쟁 속에 성장한 한국 영화를 운운하며 영화 산업의 규제 완화를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니 말이다. 단순히 그런 상업적 시선으로는, 독립예술영화가 시장에서도 제도에서도 도태되어도 이상할 일 없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과학 연구를 두고 ‘90% 이상 실패해야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더랬다. 이는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지속해야만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뒷말을 내포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의 핵심이 ‘성공’에 있다기보다는 연구의 목적이 성공과 실패라는 이원론적인 결과에 있지 않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단기적 상업적 성과로만 저울질할 수 없다. 시장에서 도태되는 작은 영화들이 단기적으로는 불필요한 어떤 종의 멸종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를 뒤흔드는 일이 될 것이다.

기쁨과 축하의 시기를 틈타 그 기념비적인 성취를 오역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