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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페라하우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백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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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1-09 19:12:44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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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 북항에 들어서는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인해 부산 공연예술계에서 많은 갈등과 토론이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짓자’와 ‘아예 짓지 말자’는 극한 대립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오페라 하우스의 현재 설계도면을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 부산에 필요하며 부산을 대표할 오페라 하우스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한마디로 외형에만 치우친, 내실 없는, 흔하디흔한 ‘다목적 극장’일 뿐이었다. 세트 제작실과 보관실도 없었고, 드라마나 발레를 공연하기에도 무리가 있었고, 같이 존재해야 할 드라마 전용 극장도 보이지 않았다. 건립을 찬성하는 측의 주장이던 고용창출 관점에서 봐도 오페라 상주단원들이 머물 공간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새로운 설계로 부산 현실에 맞는 극장을 짓자고 말했다. 이왕 큰돈 들여 짓는다면 외형보다는 내실 있는 극장을 짓고, 그 안에서 특정 장르가 아닌 전체 부산 공연 예술계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부산에서 큰 규모의 공연을 올리기는 무척 어렵다. 후원업체와 관객 수도 한정돼 있고, 부산시의 지원예산도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해마다 공연단체들은 적은 예산으로 적정한 규모의 극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몇 개 극장 말고는 객석의 시각선과 무대시설 등이 공연 올리기엔 모자란 극장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볼 때 3000억 이상을 들여 대극장 하나를 짓는 것보다 그 돈으로 장르별 특징에 맞는 다수의 극장을 짓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고 부산 현실에 맞지 않겠는가? 북항의 그 장소에 규모를 줄인 800석 정도 오페라하우스 한 개동, 500석 규모 연주홀 한 개동, 500석 블랙박스극장 2개동, 300석 블랙박스 극장 두 개동, 150석 규모 제작 스튜디오 겸 극장 두 개동, 바다를 바라보는 2000석 야외극장.

이렇게 크고 작은 아홉 개 극장을 모아놓고, 어떤 극장은 부산항대교가 보이게 무대 뒷문이 열리게 해 실험적 공연에 알맞은 극장으로 활용하고, 다른 극장은 좌석과 무대를 자유롭게 이동하게 해 어떤 날은 수정동 산복도로가 배경이 됐다가, 다른 날은 부산항대교와 영도가 배경이 되는 그런 극장이 지어지면, 지금 짓고자 하는 덩치만 큰 극장보다 활용도가 훨씬 높지 않겠는가? 관객도 발걸음 옮기기가 지금 설계의 극장보다 쉬워질 것이다.

부산에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무대 제작소와 전문 제작자를 키울 교육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제작소란 대형 작화막 두 장 정도는 그릴 수 있는 실내 제작 스튜디오와 세트보관실 및 대여소, 조각실, 의상·소품 제작실 등이다.

이런 제작소를 부산시에서 만들어 제작자들에게 유료 대여도 하고 세트를 저렴하게 보관하는 기능도 하게 한다면 큰 예산이 들어가는 무대세트 예산 면에서 공연단체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울 것이다. 그곳에 다른 지역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레지던시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숙박시설도 갖춰 여러 지역에서 온 에너지 넘치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저비용으로 활용하게 하고 외국 전문가도 장기간 머물며 작업한다면 제작 기술 축적은 물론, 아직 부산에 부족한 무대제작 아티스트 공급도 원활해질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모이고 ‘부산의 이 장소(SITE)’에서만 만들어지는 ‘장소 특정적 공연’이 생산된다면 부산의 진정한 인프라와 콘텐츠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부산에 필요한 극장이란 생산·공급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고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다수의 제작 극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부산시는 시민의 돈으로 짓는 공공 극장에 권력·자본의 논리만 적용해, 전문화되고 특화된 극장이 아닌 시대에 뒤떨어지는 큰 다목적 극장을 고집한 것 같다.

시민 세금이 들어간 공공의 극장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공공의 극장이 이미 산업화된 뮤지컬 또는 대형 공연 기획사의 논리대로만 접근한다면 지역문화의 자립성과 주체성은 상실될 것이다. 그런 정책의 결정자는 그 책임에서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무대미술가·경성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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