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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기쁘게 혼나기 /이노성

배고픈 청년 공짜밥 준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

정치인도 민심 공감해야 국민에 ‘기쁘게 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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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신년기획 ‘실험카메라’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일용직 노동자(후배 기자)가 공짜 밥을 얻어먹는 과정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담은 ‘한 끼 줍쇼’ 동영상이 닷새만에 조회 수 30만 회(페이스북 기준)를 넘겼습니다. 배고픈 청년에게 한 끼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입니다. 그 청년의 자존심을 꺾지 않고 조건 없이 한 상 차려준 음식점 사장님들의 따뜻함이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재미있는 댓글도 많습니다. “울컥하면서도 따뜻한 분들이 있어서 푸근한 마음이” “아직 세상은 살 만합니다” “이게 뭐라고 자꾸 눈물이 나냐” “사장님, 제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부산분들 싸라(살아)있네” “(음식점 상호를) 알려주세요. 매출이 올라야하니까”….

웬만한 흥신소보다 낫다는 ‘누리꾼 수사대’가 가만 있을 리 없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할머니는 ○○식당” “베트남 쌀국수를 주신 가게는 ××”….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은 “혼내주러 가겠다”였습니다. 여기서 ‘혼내다’란 장사가 너무 잘 돼 사장님이 정신 없이 바쁘도록 자주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기쁘게 혼내기’와 ‘기쁘게 혼나기’가 만나는 음식점을 상상하니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여행자의 외투는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 벗긴다고 합니다. 공짜 밥에 담긴 온기가 생판 얼굴도 모르는 수십만 누리꾼의 마음을 연 열쇠입니다.

유독 마음을 열지 못하는 곳은 정치판입니다. 존재의 이유가 갈등 생산이라고 해도 무리 없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가 소통입니다. 소(疏)는 트다는 뜻입니다. 내 진심을 터 보여야 상대와 통(通)합니다. 정치인이 무릎을 맞대고 상대를 설득하는 장면을 지난해에는 보지못했습니다. 그들은 고집을 피우다 마음대로 안 되면 광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의회정치는 실종됐습니다. 기뻐서 정치인을 혼내러 가야겠다는 국민보다 꼴도 보기 싫다는 국민이 더 많은 이유일겁니다.

국제신문이 지난달 30일 폴리컴에 의뢰한 여론조사(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정치와 민심의 단절 현상이 잘 드러납니다. 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절대로 찍고 싶지 않은 정당이나 단체로 자유한국당이 43.1%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절대 찍고 싶지 않다는 응답도 31%였으니 도긴개긴입니다.

한국당에 대한 비토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감 능력 부족 아닐까요. 인재영입 1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공관병 갑질’ 논란 당사자인 박찬주 전 대장(한국당)과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교수(민주당) 가운데 누구에게 더 끌렸을까요. 민주당이 인재영입 2·3호로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원종건(27) 씨와 김병주(58) 전 육군대장을 영입하는 사이 한국당은 패스스트랙 정국에 발목이 잡혀 제자리걸음입니다. 보수언론조차 “한국당은 ‘꼰대 정당’ 이미지를 못 벗었을 뿐더러 무슨 대책을 발표해도 2030세대의 차가운 무관심과 외면을 받는 ‘메신저 거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조선일보 지난달 30일 자 5면)할 정도입니다. 여당도 203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처지가 아닙니다. 민주당을 절대 찍고 싶지 않다고 한 응답자 중 19~29세(35.2%) 비중이 가장 높았기 때문입니다. 여권에 등 돌린 청년층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국회 입성을 노리는 예비후보 중 일부는 기성 정치인을 닮아갑니다. ‘××× 잡으러 떴다’거나 ‘경쟁후보는 절대 안 된다’식의 비난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가치’를 듣고 싶어하는데 그 후보는 상대 약점을 이야기합니다. 이래선 표심을 얻기 어렵습니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5가지 기준-도(道)·천(天)·지(地)·장(將)·법(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가 도(道)입니다. 손자가 말하는 도는 군주(정치가)와 백성의 뜻이 같음을 말합니다. 유권자가 정치가의 가치를 지지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의 지지를 받으려면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이런 점에선 음식점 사장님들이 정치인들보다 백배 나은 것 같습니다.

언론 역시 독자 마음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올해도 언론은 당파적 이해관계에 파묻히고, 기사 쓰는 AI(인공지능) 등장에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정확함보다 속보 쓰기에 아등바등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한편에선, 밥 한 끼를 기꺼이 내어준 음식점 주인장처럼, 독자의 마음을 열려는 노력은 계속될 겁니다. 실험카메라도 이러한 시도 중 하나입니다.

새해에는 기쁘게 혼내고, 기쁘게 혼나는 현상이 정치나 언론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들불처럼 번지길 기대합니다. 복 많이 받으시길.

편집국 부국장 ns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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