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던 어른들 말씀이 맞는 걸까. 연초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해서 연말에는 정리도 하고 나만의 휴식을 취하자’고 했던 그 연말이 이렇게나 빨리 오고 또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았고, 연말의 달콤한 휴식이나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해를 넘겨버렸다.

주변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더니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다. 분주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나아지는 게 없다고 넋두리를 해댔다. 쳇바퀴 속 다람쥐라나. 흔히 직장생활을 다람쥐 쳇바퀴에 비교하는데, 앞으로 나아가거나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머무르는 듯한 불안감의 표현이다.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한 해의 목표나 방향 설정을 위해 기억하기 쉬운 한 단어, 키워드를 간직하며 1년을 보내는 편이다. 2019년 내 키워드는 ‘여유’였다. 내가 이 낱말을 간직하게 된 데에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소홀했던 점이 늘 마음에 걸렸고, 자기계발이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위해서는 반드시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2019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그다지 여유 시간을 만들지 못한 데다 이를 위한 노력 또한 성실하지 못해 낙제점을 주고 싶다. 지난해도 여지없이 쉴틈 없고 여유 없는 1년을 보낸 것이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 노력도 부족했지만, 빨리 달릴수록 더 빨라지는 쳇바퀴에서 ‘조금만 더’를 외치며 쉴 새 없이 업무를 진행해온 탓이었다.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떨어지고 마는 쳇바퀴에서 여유를 찾으려 하다니, 무모하거나 무식했던 것은 아닐까.

필자도 부정적인 뜻으로 쳇바퀴 속 다람쥐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주변 사람에게 우리가 하는 디자인 업무가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반복적이라고, 이대로는 발전하기가 힘들다는 의미로 말이다.

늘 창의적이고 혁신적일 것만 같은 디자인 업무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기에 업무를 풀어내는 방식부터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되어 버렸다. 여러 개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결정권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고, 프로젝트의 무난한 진행을 위해 디자이너의 고집도 꺾어야 했다. 예산이 확정되어 주요 이슈에 맞춰 행사나 업무를 완료해 내고, 연말에는 정산과 보고가 이뤄지는 방식 또한 1년 단위의 쳇바퀴였다.

문제는 그런 쳇바퀴가 싫다고 해서 무작정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것이다. 쳇바퀴가 도는 중간에는 빠져나올 생각을 할 겨를도 없거니와, 쳇바퀴를 벗어난다는 것은 그나마의 보상을 포기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쳇바퀴를 돌고 나서 받는 보상이 있어야 쳇바퀴를 탈출할 것인지 말지 고민할 수 있다. 대부분 현대인, 특히 직장인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돌아가는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부릴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쳇바퀴를 타고 달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쳇바퀴 속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쳇바퀴를 돌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쳇바퀴 속 반복 행위로 인해 경험과 노하우를 습득할 수도 있어야 하고, 쳇바퀴 속도를 조절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짬을 내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든지, 끊임없이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작은 목표들을 세워 조금씩 이루어 나간다든지 등. 꾸준한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한 가지 희망도 있다. 쳇바퀴를 계속 돌다 보면 오히려 쳇바퀴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퀴가 클수록 여유 있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연륜(年輪)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나이테처럼 우리 노력에 따라 쳇바퀴 크기가 커질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커진 바퀴가 앞으로 나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제 막 밝아온 새해, 나의 키워드는 다시 한번 ‘여유’가 될 것 같다. 성장의 쳇바퀴를 달리며 잠깐씩 뒤를 돌아볼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 디자인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