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경남 김해 호계의 천변에 나뒹구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던 파사석탑이 국립중앙박물관 초청으로 서울 나들이 중이다. 2000년 만의 나들이라고 한다. ‘가야본성-칼(劍)과 현(絃)’ 특별전과 보존 복원을 위해 석 달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다. 어쩌다가 파사석탑 연구자가 된 나도 파사석탑을 따라서 서울 나들이를 했다. 두 번이나 다녀왔다.

좀 더 가까이에서 파사석탑을 보고 싶었다. 보존 처리된 탑신에서 혹 파사석탑의 역사를 입증할 만한 새로운 흔적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면, 파사석탑은 그 자체로 가락국의 초기 역사를 입증하는 ‘산증인’이다. 문헌에도 있고 실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사석탑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 속 탑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파사석탑의 이번 서울 나들이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파사석탑 돌에 대한 암석학적 분석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본초’의 파사석이라 했고, 최근에는 탄산염각력암 또는 붉은색 대리암이라는 견해가 있었는데, 이번에 고려대 산학연구단의 과학적 분석 결과 파사석탑의 돌은 엽랍석을 함유한 사암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파사석탑이 신화에서 역사로 진입하기까지 길은 여전히 멀다. 인도 또는 다른 어떤 지역의 돌 중에서 파사석탑의 돌과 동일한 성분의 사암을 찾아내는 것도 지난한 일이지만, 설사 같은 성분의 사암을 찾는다 해도, 이를 근거로 바로 그곳이 파사석탑의 산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 곳 돌이 동일하다는 것과, 한 곳 돌이 다른 한 곳으로의 이동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파사석탑의 돌이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돌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아직은 조심스럽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파사석탑 자체에는 그 기원과 유래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흔적이 없다. 기단부 바로 위에 놓인 두(세) 개 부재의 아랫면에는 목조건축물의 공포를 연상하게 하는 조각이 있다. 그러나 해체된 부재의 안을 살펴보면, 그것은 단지 장식을 위하여 차용된 석탑의 공포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쓰임새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파사석탑은 한때 호계사에 있었고, 또한 그 속에 사리공이 조성되어 있으므로 불탑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파사석탑이 언제 어떻게 불탑이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호계사에 봉안되기 이전 400여 년 동안 파사석탑의 역사는 여전히 공백이며, 사리공은 ‘삼국유사’ 편찬 이후, 여말선초 어느 시기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파사석탑이 아유타국에서 배에 실릴 때부터 탑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가락국기’에는 허황옥이 가지고 온 물건으로 비단과 의상, 한사잡물 등이 나열되고 있지만, 여기에 파사석탑은 없다. 만일 파사석탑이 처음부터 탑이었다면, 더욱이 바다의 거센 풍랑을 잠재워 허황옥이 가락국에 무사히 닿을 수 있게 한 진풍탑이었다면, 허황옥과 함께 온 신하들의 아내 이름까지 꼼꼼하게 챙긴 ‘가락국기’ 편찬자가 과연 파사석탑을 그냥 지나쳤을까?

애초 허황옥의 배에는 파사석탑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탑의 석질과 외양으로 볼 때, 파사석탑의 돌은 본래 탑을 조성하기 위한 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파사석탑의 돌은 그 석질이 균일하지 않아 도무지 석탑 부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파사석탑 돌은 본래 탑을 위한 돌이 아니라,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한 평형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파사석탑을 이루는 6개 돌의 높이가 거의 같다는 점에서도 짐작된다. 기단부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탑신의 높이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 석탑의 일반적 양식인데, 파사석탑을 이루는 여섯 개 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돌이 배의 평형석으로 가락국에 들어온 후, 어느 시기에 그 돌이 탑으로 조성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배의 평형석으로 파사석탑 돌이 들어온 시기와 탑이 만들어진 시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드러난 역사보다는 장차 역사가 될 신화를 더 많이 품은 것이 지금의 파사석탑이다. 이번 서울 나들이를 계기로, 파사석탑이 신화에서 한 걸음 더 역사로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선문대 대학원 통합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