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바다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시대가 올 줄 알았다. ‘해저 이만리’와 같은 과학소설 영향 때문이었다. ‘해저 이만리’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약 160년 전 발표하였다.

해저에는 금과 은 따위의 금속이 무진장 묻혀 있고, 바다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숨을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만들 수 있다. 이뿐 아니다. 해양생물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을 수도 있다고 씌어 있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사람이 바다에 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오래 전 해저도시 가능성을 피력한 소설가의 혜안이 빛난다.

인류가 물고기처럼 바닷속에 사는 상상은 어린 나를 무척이나 설레게 했다. 그런데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에도 해저 생활은 아직 미래의 꿈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저 개발을 위한 해양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해저 광물자원, 에너지자원, 생물자원, 심층수는 개발 중이거나 개발돼 이용되고 있다.

인간의 활동 영역은 서서히 바닷속으로 넓혀지고 있다. 해저가 우리 생활공간으로 활용된다. 해저 호텔이나 레스토랑, 해중 전망대 등은 이미 세계 곳곳에 만들어졌다. 몰디브에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수심 5ｍ에 문을 연 해중 레스토랑이 있다. 경북 울릉도에는 해중 전망대가 있고, 울진에 건설되는 국립해양과학관 부대시설로 국내 최대 규모 해중 전망대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년 5월 바다의날을 맞아 개관할 예정이다. 유사한 해중 전망대는 미국령 괌과 일본 오키나와 등에도 있다.

미국은 1986년 플로리다 남단 산호초 해역 수심 약 20ｍ 해저에 과학기지 아쿠아리우스(Aquarius)를 만들었다. 해안에서 4.5㎞ 떨어졌으며, 에너지를 자체로 공급하는 해저기지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해저기지이며, 바다 연구는 물론 우주비행사의 훈련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일본과 중국도 해저 거주공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약 50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해저도시 ‘오션스파이럴(Ocean Spiral)’을 계획하고 있다. 강철보다 20배나 강한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해 해저도시를 만든다. 사람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전기는 해수온도차 발전으로, 물은 해수담수화 기술로 공급한다. 이 시설에는 해저에 매장된 희토류와 메탄하이드레이트 자원을 이용하는 공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중국은 수심 6000~1만 ｍ 초심해에 해저기지를 건설하려는 하데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18년 4월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시작됐으며, 우주 정거장 건설에 성공한 중국이 해양굴기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높은 수압을 견뎌야 하는 심해 정거장은 우주 정거장보다 건설 난도가 높다. 중국은 지난 11월 1만 ｍ 이상 해저에서 수압을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을 완공해 이미 성공 가능성을 열었다. 이로써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에도 사람을 보낼 수 있는 기반 기술을 확보한 셈이다.

해저기지·해저도시 건설을 비롯한 해저 개발은 왜 필요할까? 우주를 개발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주는 인류의 제2 거주 공간으로 활용되고, 지구 자원 고갈에 대비하며, 군사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해저 개발이 우주 개발보다 늦게 시작됐지만, 해저기지는 우주기지보다 현실적 가능성이 더 높다. 자원 가치나 근접성 등을 고려하면 해저기지는 경제성이 더 높은 인류의 새 삶터가 될 것이다.

해양 개발은 과학기술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 개발처럼 많은 비용이 들어가므로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강대국들은 해양과 우주에서 국가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주 탐사나 심해 탐사 성공이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국가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높이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달이나 심해저에 자국 국기를 꽂는 장면에 국민의 어깨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15세기 대항해시대 자원과 새로운 땅을 찾아 거친 파도를 헤치고 대양 항해에 나섰던 나라들은 강국의 부를 누렸다. 육상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현대 해양강국들은 새로운 자원과 서식지를 찾아 심해로 탐사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판 대항해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도전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바깥쪽 외계를 외부 우주라 한다면 지구가 품은 내부 우주는 바로 신비에 싸여 있는 깊은 바다이다. 내부 우주는 외부 우주보다 훨씬 더 가깝고 자원이 더 많다. 해양으로 우리 생활공간을 넓혀가는 것은 인류 미래를 위한 보험과 같다.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 있다는 미래학자들의 이야기를 굳이 인용하며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말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