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는 대통령 직선제 쟁취다. 노태우·김영삼(YS)·김대중(DJ)·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이 30여 년간 차례로 탄생했다. DJ를 제외한 6명은 경상도에서 입지를 다졌다. YS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 서·동구에서 대권의 칼을 갈았다. 사상은 초선 국회의원 출신인 문 대통령이 배지를 단 곳이다. 대구·경북(TK)은 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근거지다.

‘킹 메이커’인 영남은 제1의 도시로 성장했나. 통계를 보자. 지난해 부산의 총사업체 증가율(0.8%)은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였다. 5년마다 절대권력을 배출한 부산·대구(0.5%)와 서울(0.1%)만 1% 미만을 기록했다. 일할 곳이 없으니 청년은 고향을 떠난다. 수도권 인구는 연말이면 사상 처음으로 50% 돌파가 확실시된다. 지난 7월 기준 비수도권 인구(2586만5000명·50.02%)는 수도권 인구보다 겨우 2만1000명 많았다.

수도권 쏠림은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잠시 주춤하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도 인구 유입 억제는커녕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계획을 내놔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국회 이전이나 공공기관 2차 이전은 국정 주요 어젠다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TK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가난’을 면치 못했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수도권 집중만 강화한 ‘역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국가 정책은 ‘대통령의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움직이기 않기 때문이다. 낡은 중앙집권적 국가경영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PK(부산 경남)·TK는 늘 배가 고플 수 밖에 없다. 지난 3일 국무회의 풍경을 보자. 국토교통부는 제5차 중·장기 국토종합계획안(2020~2040년)을 상정·의결했다. 부산시가 공을 들였던 ‘(김해공항 확장 대신) 24시간 운영 가능한 동남권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내용은 일방적으로 삭제(국제신문 지난 6일자 6면 보도)됐다. “국무회의 상정 직전까지 ‘24시간 신공항’ 문구가 있었다”는 부산시 주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국토교통부가 ‘김해신공항(김해공항 확장)안을 재검증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뭉갰거나 겉으로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하는 재검증에 응하면서도 속으로는 ‘김해공항 확장’을 밀어붙이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지역 발전을 막는 악마는 이처럼 디테일에 숨어 있다.

야당도 칭찬 받기는 어렵다. 정부가 지역발전을 위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공사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자 자유한국당은 “총선용 선심 정책”이라고 반대했다. “서울처럼 인구가 많은 곳은 비용 대비 편익이 높게 나오는 반면 인구가 적은 비수도권 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식의 결과가 나와 균형발전이 더디다”는 목소리는 무시했다. 예비타당성 면제 요건 완화는 박근혜 정부가 주도했었다. 당시 명분도 ‘균형발전을 위해서’였다.

“서울 중심의 정부 시스템과 정치권력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비수도권은 영원히 찬밥 신세다. 대통령의 선물로 창문 하나 바꾼다고 부산의 삶이 달라지겠나. 골조부터 바꾸자.” 박재율 지방분권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또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으로 가는 비상구라고 했다. 태생은 PK·TK인데 눈은 서울만 바라보는 후보에게 더는 속지 말자는 의미다.

지역발전 공헌도를 총선 투표 기준으로 삼는다면 여야 정치인들은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이미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청와대 출신’이 40명을 넘었다. 한병도·윤영찬 전 수석부터 박수현 전 대변인까지 하마평에 오른다. 본인 부인에도 출마 예상 지역구까지 제기되는 인사도 다수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경남 양산과 서울 구로을 출마가 점쳐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 대표는 이들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보다 지역에 관심을 많이 둔 건 인정한다. 문제는 그 관심이 법률이나 정부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하고 대통령 개인적인 관심에 그친 점이다. 당장 국세와 지방세비율을 6대 4까지 높이겠다던 재정분권 공약은 지지부진하지 않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낙제점이라면 현 정부는 C학점이다.”

역대 선거는 늘 ‘바람’이 좌우했다. ‘친박 마케팅’이나 ‘친노 마케팅’이 지역 이슈를 덮었다. 유권자의 채점표에 ‘지역’을 추가하면 내년 총선에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중 당선 안정권에 드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자유한국당 현역의원도 냉혹한 평가에서 예외는 아니다. 자치분권 3법으로 불리는 경찰법 개정안(자치경찰제)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지방이양일괄법(중앙정부 사무 지방 이양) 제정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