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센 권력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의 진리로 통하는 경구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그냥 잊고 산다. 권력이라는 걸 굳이 논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가진 진짜 권력자는 무섭게 새겨야 할 말이다. 아등바등 권력을 쥐고 싶어도 세월 따라 자동 교체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겹겹으로 고달픈 자리라고 하겠지만, 정치의 정점에 선 대통령은 중요하다. 정치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전에만 적시된 아주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정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시야를 좁혀 부산의 최고 권력자는 누구일까. 여러 시각이 있겠지만, 민선 부산시장일 성싶다. 김기재 전 시장을 끝으로 관선 시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진행된 민선 시장 시대에는 부산시 쪽으로 지역의 권력이 집중됐다. 당연한 현상이다. 정부 권력이 내려보내는 임명직과 달리 시민 권력이 택한 선출직 시장의 진정한 힘이다. 지방자치제의 묘미다.
민선 부산시장들은 험난한 선거를 치르고 재직 시 저마다 헌신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임기가 보장되고, 지역에서는 그 나름의 힘이 있으니 ‘시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매진했다. 정치를 잘해 자신에게 주어진 힘의 시간을 더 연장하고 싶은 권력 의지는 나쁠 게 없다. 역대 민선 부산시장의 등장과 퇴장 과정을 되돌아 보면 흥미롭다.
문정수 전 시장은 1995년 선거에서 훗날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는 노무현 후보와 이전에 관선 부산시장을 지냈던 김현옥 후보를 꺾고 초대 민선 부산시장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1997년 한보그룹 비리로 기소되고, 이 때문에 이듬해 제2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경선에서 안상영 후보에 밀려 퇴장했다. 그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뒤 권력의 시간을 더는 늘리지 못 했다.
안상영 전 시장은 1998년 선거에서 무소속 김기재 후보를 누르고 민선 2기 부산시장을 차지한 데 이어 2002년 선거에도 다시 출마해 한이헌(전 국회의원), 김석준(현 부산시교육감) 후보를 따돌리고 민선 3기까지 꿰찼다. 그런데 2002년 선거 당시 부산 동성여객(현 삼성여객) 등으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복역 중 2004년 2월 부산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인물이 됐다. 이후 열린 보궐선거에서 안상영 민선 3기 시절 행정부시장과 정무부시장으로 각각 활동했던 오거돈, 허남식 후보가 격돌해 화제를 모았다. 부시장 두 사람이 차기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 2급 기획관리실장이 시장대행을 맡았던 점도 이채롭다. 부산시장을 중심으로 행정의 양 날개를 이뤘던 두 후보가 당시 TV 토론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풍경은 비정했다. 결과는 정무부시장 승리.
허남식 전 시장은 2006년 다시 한번 오거돈 후보를 꺾고 당선된 데 이어 2010년 선거에서도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김정길 후보를 꺾는 등 민선 3·4·5기 부산시장으로서 10년간의 권력을 누렸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는 연임 제한에 걸려 불출마한 그는 2017년 20대 총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당내 지역구 경선 패배로 국회 권력 확보의 꿈을 접어야 했다.
서병수 민선 6기 부산시장은 2014년 선거에서 오거돈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지난해 선거에서 리턴 매치로 붙은 오 후보에게 지는 바람에 권력의 시계는 멈춤 상태다. 서 전 시장의 시선은 내년 총선은 물론 2022년 제8대 지방선거까지 뻗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의 권력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오거돈 시장은 4번의 도전 끝에 꿈을 이룬 불굴의 권력 의지를 보여줬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단 4년. 1년 반의 시간이 흘러가는 지점에서 시민의 성에 차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변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정치 인맥 지형도가 얽히고설킨 지역 여당 후보로 나선 터라 당내 역학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 상황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산 경제는 당장 개선될 조짐도 안 보인다. 1년 반은 뭔가 보여줄 시간으로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2년 반을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어쩌면 남다른 결기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민선 7기 부산시정의 슬로건대로 부산을 시민이 행복한 해양수도로 우뚝 세우는 데 기반을 닦을 시간은 충분하다. 오 시장의 권력 의지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느낌이다. 언제가는 사라질 권력의 힘을 어느 시점까지 이어갈지 두고 볼 일이다.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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