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회화를 비롯한 미술작품을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보고 경험한다. 지금은 가장 주목받는 요즘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지구 어디에서나 지면이 아닌 휴대전화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발걸음을 옮겨 미술관을 찾거나 심지어 지구 반대편 저 너머 도시의 미술관을 찾는 것은 직접 우리 두 눈으로 그 작품을 경험하고 싶은 강한 욕구와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그 작품을 두 눈으로 실제 마주한 순간 지금까지 지면이나 화면으로 경험한 것과는 다른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순간이 작품의 위대함이 주는 감흥이라기보다 장소가 주는 시각적 풍요로움 또는 이국으로의 여행에 대한 감정적 도취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러기에는 위대한 미술 작품을 직면했을 때의 정서적 환기는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놀랍다. 무엇보다 가장 손꼽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시각을 통해 그 작품의 질감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형태와 색깔을 인식하는 것보다 사실 훨씬 더 직관적일는지 모른다. 기술 발달로 고해상도 모니터와 사진이 하루가 다르게 그 기능과 성능이 향상된다 해도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질감 인식과 그 쾌감을 대체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음악은 미술과는 달리 눈이 아닌 귀를 통해 체험할 수 있다. 멜로디와 리듬을 통해 우리 정서를 환기시킨다. 멜로디와 리듬, 우리가 가장 흔히 꼽는 음악을 이루는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질감이다. 어떻게 음악을 듣는 데 질감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미술 작품을 손으로 만지지 않고 시각을 통해 그 질감을 인식하는 것처럼 음악도 우리가 만질 수는 없지만 청각을 통해 질감을 전달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하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지금 대중음악은 특히나 그것이 그 음반의 또는 그 아티스트의 시그네처가 될 만큼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예를 들어 음악의 성격에 따라 우리가 디지털 녹음 방식이 아닌 아날로그시대의 테이프를 실제로 사용하는 등 하이 파이가 아닌 로 파이 기술을 사용해 음악 소리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 역시 바로 음악의 질감을 만들어 가는 선택과 과정에 관한 영역을 다루는 것이다.

또 전형적인 노래와 기타 피아노 드럼 등 악기 소리의 이미지와 위치가 어그러져 있기도 하거나 어떤 악기 소리가 실제 연주보다 비정상적으로 크고 각 악기 소리가 마치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녹음한 것처럼 이질적이고 균형이 맞지 않는다든지 등 일반적 음악의 정형을 벗어나는 질감의 예는 특히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이상하게 들리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대부분 그 아티스트와 음반을 더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질감을 시도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새 앨범이 발매됐다. ‘Everyday Life’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앨범은 일출에 관한 테마로 8개 곡이 수록됐고 일몰 테마로 다시 8개 음악을 이어나가며 마지막 타이틀 곡 ‘Everyday Life’로 끝을 맺는다. 원래 콜드플레이의 팬이기도 했지만 특히나 이번 앨범은 들을 때마다 록 아티스트가 이렇게 멋지게 나이 들어갈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낄 만큼 너무나 아름답다. 다섯 번째 트랙 ‘Daddy’는 이 앨범에서도 손꼽는 곡이다.

한 곡을 매일 이렇게 반복하면서 듣는 게 정말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요즘 이 곡에 푹 빠져 있다. 단순한 피아노의 반복적 멜로디가 도입부로 흐르며 시작하는 이 곡은 듣는 순간 몽환적이고 공간의 울림이 무엇보다 크게 느껴진다. 피아노와 베이스 그리고 드럼 소리가 저 멀리 다가오는 것처럼 무척 멀게 느껴지고 답답할 만큼 그 소리가 아주 어둡다. 저 어딘가의 옛 라디오나 수리가 필요한 턴테이블의 스피커에서 나올 만한 소리라고 하면 표현이 적절하려나. 그러나 음악 도입부가 지나고 크리스 마틴의 보컬이 갑자기 밝게 그리고 마치 어두운 화면의 해상도가 끌어 올려지듯 우리 눈앞으로 바짝 다가오며 본 음악이 시작될 때 정서적 감흥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래와 반주 사이 이러한 상이하고 비전형적인 질감은 노래를 듣는 내내 지속된다. 그것은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 감동을 지속시켜준다. 만약 이 음악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질감으로 체험했다면 이 감동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곡에서 그 질감은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음악이 녹음을 통해 청중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음악의 질감이란 내용에 맞는 가장 어울리는 종착역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자 창작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 노래 한 곡이 설명해 준다.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