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동문회에 참석했더니 선배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보니 중소도시에 자리한 모교의 학생 수가 줄어 인근 학교로 통폐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말을 듣고 보니 스스로도 답답해졌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오전 ·오후 수업을 따로 해야 할 정도로 재학생이 많았는데 모교의 교세가 그렇게 됐다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이런 일을 겪은 까닭인지 요즘에는 언론에 ‘소멸 위험 지역’ 관련 기사가 실리면 이전과 달리 눈길이 자주 간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줄면서 끝내는 해당 지역이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게 핵심이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편에서는 인구가 점차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지역 소멸론이 근거 없는 호들갑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규모가 작은 고장에서 자란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 같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고향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제출한 ‘한국의 지방소멸위험지수 및 국가의 대응전략’이라는 자료에 담긴 내용이 더 충격적이다. 지난달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무려 97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 수치는 전체의 42.%에 달한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지역에 사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측정한다. 이 지수가 0.50 아래면 소멸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노인 인구가 가임여성 인구보다 배 이상이 많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이런 추정이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사안일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도 하다. 그런데 이건 상황을 너무 가볍게 판단한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부산의 지방소멸위험지수는 0.69였다. 0.50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앞으로 인구 감소 추세가 반등될 조짐은 거의 없어 부산도 언제 기준선 아래로 떨어질지 모른다.

이 때문에 차후 모든 정부 정책 수립은 인구 감소 방지에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백번 타당한 말이다. 특히 국토개발의 밑그림을 그릴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제5차 국토종합계획안’(2021~2040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국토종합계획안은 국토 개발과 관련된 여러 방안 가운데 최상위에 자리한 개념이다. 어떻게 국토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국가에 보탬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전 같으면 모든 정부 정책은 산업발전을 통한 경제개발 즉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됐다. 이러다 보니 웬만한 것은 국부를 쌓는다는 명분 아래 희생됐다. 때로는 국민의 기본권도 무시됐다.

그런데 제5차 국토종합계안은 좀 다르다. 최우선 과제를 적극적인 인구 감소 대응으로 정했다. 1971년 처음으로 국토종합계획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나온 4차례 작성된 계획안 가운데 인구 문제가 중요하게 거론된 것은 이번 처음이다. 하기야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표어가 나붙던 때에 인구 감소라는 게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걱정에 불과했을 터다.

6대 핵심전략의 1, 2 순위로 ‘개성 있는 지역발전과 연대·협력 촉진’ ‘지역산업 혁신과 문화관광 활성화’가 올라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세부 계획은 혁신도시와 같은 균형발전 거점 지속적 육성, 수도권과 공생을 통한 지역발전 촉진, 각 지역이 보유한 다양한 기능 상호 연계 강화, 고령자의 특성을 고려한 도시공간 구축 등이다. 요약하자면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고급 인력의 외부유출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방안은 인구 감소가 현실화된 지방을 살리지 못하면 나라 전체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을 인식한 데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제5차 국토종합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돌발 변수가 적지 않을 것인 데다 국내외 여건에 따른 계획 수정도 불가피할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금방 나온 정책을 ‘절대선’처럼 칭찬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지방소멸의 현실화 가능성을 전제로 국토개발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만은 애써 깎아내릴 필요가 없을 듯하다. 위기가 닥치면 새로운 생각과 방법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지방이 없으면 수도권도 없고, 국가 존재마저 위험해진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 아닌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정부의 이런 기조가 앞으로 국토개발뿐 아니라 다른 정책 수립 때도 굳건한 기준점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