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중 나치를 몰아낸 미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암호명은 ‘미키 마우스’였다.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만 10~49세 남녀를 대상으로 국내외 캐릭터 인지도 조사를 하면 10위 안에 빠지지 않았다. 올해로 91살이나 된 이 생쥐는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번 캐릭터이기도 하다. 원래 50년이던 사후 저작권 보호기간이 70년으로 늘어난 게 미키 덕분이다.

2003년 EBS 만화 ‘뽀롱뽀롱 뽀로로’로 데뷔해 16년째 사랑받고 있는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8000억 원, 경제 효과는 5조7000억 원으로 업계에서 추산한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유럽과 남미까지 120여 개국에 팔려나가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다. 몇 년 전 방한한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아이들에게 주려고 뽀로로 인형을 잔뜩 사간 것만 봐도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디즈니가 1조 원에 인수 제의를 했다는 설도 있었다. 뽀로로의 성공은 ‘꼬마버스 타요’(2010) ‘라바’(2011) ‘로보카 폴리’(2011) 등 국산 캐릭터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최근엔 뽀로로 동생 ‘펭수’가 성공 계보를 잇고 있다.

울산 중구에는 지금 대표 캐릭터인 ‘울산큰애기’를 조형물로 서로 설치해달라는 동네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울산큰애기는 원래 중구 반구동의 처녀를 외지인이 일컫던 말이다. 이 지역이 태화강 동천강 약사천의 접목지여서 쌀과 과일농사가 잘됐고 아가씨들도 피부가 유난히 고왔던 데서 비롯됐다. 빨간 원피스에 핑크빛 볼을 가진 이 단발머리 아가씨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전국 캐릭터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인기는 더 상승했다. 구청 측은 설치비가 1000만 원이 넘는 데다 사후관리 문제도 있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지자체에 불기 시작한 캐릭터 바람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적지 않다. 전북 남원에는 춘향·몽룡 외에도 흥부·놀부 캐릭터와 옹녀·변강쇠 캐릭터가 있다. 나름 캐릭터 부자이지만 성춘향과 이몽룡 말고는 남원하고 뭔 관계인지 싶을 것이다. 전남 장성과 강원 강릉은 홍길동 캐릭터 소유권을 놓고 한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성은 홍길동 이름을 붙인 막걸리를 만들고 테마파크, 생가터까지 조성해 완전히 자체 캐릭터로 굳혀버렸다. 캐릭터는 잘만 만들면 지역을 각인시켜 지자체 홍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끊임없는 스토리텔링 개발과 보존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