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1904년 ‘조건반사’란 이론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실험은 단순했다. 그는 개가 먹이를 먹지 않고도 침을 흘리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에 종소리를 들려준 뒤 먹이를 주는 실험을 반복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개는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렸다. 뇌는 어떤 조건에 특정한 반응을 한 것이다. ‘조건반사’란 이론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이론은 현대 심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기법이 요구되는 광고의 기본 이론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정 자극을 제시하면서 상품을 연상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뜬금없는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학습효과는 분명 있어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업계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나 규제가 내려진 곳에 투자하라.” 지금도 이를 믿는 이가 많다. 실제 정부의 대책 후 아파트 가격은 주춤하다가 반등하고 이후 추가 대책이 나오는 현상이 반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기억을 되살려보자. 참여정부는 5년간 발표한 대책만 30여 차례나 될 정도로 부동산투기와 전쟁을 치렀다. 특히 강남 집값 잡기에 ‘올인’했다.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 등 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2015년 발표를 보면 참여정부 5년간 오른 부동산 총액은 50년간 오른 금액의 46%를 차지했다. 특히 서울은 폭등했다. 참여정부 말인 2008년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가격은 출범 때보다 57%나 상승했고, 강남권은 67%나 올랐다.

사실 집값 상승은 국민의 정부 유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발단은 규제 완화였다. 국민의 정부는 부동산 관련 규제란 규제를 다 풀었다. 주택청약제도, 분양가 상한제,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을 완화하거나 없앴다. 풀린 규제는 투자 목적의 가수요를 분양시장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다. 이때부터 분양가는 크게 올랐다. 기존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피해는 실수요자가 봤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서민의 내 집 마련은 가격이 오른 만큼 어려워졌다.

참여정부는 투기 근절에 나섰다. 하지만 한 번 풀린 규제를 한꺼번에 다시 묶기는 쉽지 않았다. 가격 통제 중심의 단편적인 규제로는 고삐 풀린 부동산 시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주택청약제도를 다주택자에게도 다 열어놓고 주택자금대출을 제한하면 돈 있는 사람에게 더 유리한 식이다. 규제는 강남에 집중됐지만, 가격은 더 많이 올랐다. 이렇게 ‘강남 불패’ 신화는 탄생했다. 아이러니다. 진보는 백성의 의식주만큼은 안정적으로 보장할 줄 알았는데.

문재인 정부 역시 예외일 수 없는 걸까. 규제 정책이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모양새가 참여정부와 비슷하다. 부동산 대책은 두 달에 한 번꼴인 16차례나 쏟아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은 상승했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2017년 5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20.41% 상승했다. 최근 부동산 대책은 시장의 반응을 바로 끌어냈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서울 27개 동 단위로 세밀하게 지정하는 ‘핀셋 규제’를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투기지역’ 공인으로 여겼다. 수요 창출로 이어졌다. 규제가 해제된 부산과 일산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쇼핑하듯 아파트를 구입할 정도다. 강남과 해운대의 일부 아파트는 정부 대책 발표 후 1억 원 넘게 뛰었다고 한다.

정부는 관계기관 합동으로 편법 증여, 차입금 과다, 미성년자 거래 등을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엄포로 여긴다. 잡을 수 없으니까 겁만 준다고 생각한다. 정부 말을 믿고 있다가 손해 본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 탓이다. 학습효과다. 하지만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상투 잡는 일도 생긴다. 전문가는 고점에서 빠진다. 이래저래 가격 상승의 피해는 서민이 많이 본다. 정보는 늦고, 투자금도 적고. 대부분 서민이 마지막 희생양이 된다. 이런 식이면 옛날식 주택청약제도가 차라리 더 좋을 듯하다. 1가구 1계좌로 제한하고 무주택자에게만 1순위 자격을 줘 분양권을 우선 보장했으니까.

어찌 보면 물질적인 불평등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집값을 통제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에 먹고살 게 많은데, 사람이 모이고 집이 비싼 건 당연하지 않나. 억지로 통제한다고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국토균형발전이 중요하다. 좋은 일자리를, 좋은 인프라를 만들면 꼭 강남에 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을 잡아 왔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식으로 장담한다. 시장의 흐름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실 인식이다.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정책 부재의 논란은 제쳐 놓고.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