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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현장] 백설기는 힘이 세다 /최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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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앞집 이웃에게 백일떡을 받았다. 우리 집 아이에게 들려보냈는데 참 신선하고 놀라웠다. 돌 잔치도 가족끼리만 하는 게 일상사가 된 지 한참인데 아기가 백일을 맞았다고 백일떡을 돌리는 모습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의 탄생이 얼마나 고맙고 기뻤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놀라웠고 어떻게 백일떡을 이웃들과 나눌 마음이 들었을까 신기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일을 너무 신기하다며 호들갑 떠는 내가,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세태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어릴 땐 이웃집엔 당연히 누가 사는지 다 알았고 이사를 오면 뜨끈뜨끈한 팥 시루떡을 나눠 먹었다. 지금은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묵례나 가벼운 눈인사도 하지 않고 내릴 층수의 숫자나 휴대전화만 본다. 다른 이를 탓할 것도 없다. 나부터도 누군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최대한 벽으로 붙어 서로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파트 철문보다 더 두껍고 차가운 무관심을 앞집 부부는 포슬포슬하고 따뜻한 백설기로 가볍게 뚫었다. 이솝 우화에서도 나그네 코트를 벗긴 건 아주 세고 추운 바람이 아니라 태양의 온기였다. 내일부터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가벼운 인사를 하리라 결심한다. 내 인사를 모르는 척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접어두고 나부터 시작해야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셈이므로.

매일 받는 독자여론팀 이메일의 대부분은 개인이나 단체(기관)가 어떤 행사를 했는지 알리는 내용이다. 그중 이웃돕기를 했다는 내용은 늘 들어가 있다. 요즘은 추운 겨울 나기를 돕는 연탄기부나 김장 행사가 많아졌다. 선행을 할 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지만 그건 옛말이다. 요새는 신문을 통해 알리더라도 하는 것 자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선행은 전염성이 있으니 작은 기사를 보고 한 사람이라도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작은 호의나 친절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연말이 다가왔다. 사는 일이 다 팍팍하지만 잠깐의 미소나 어려운 이들과 조금이나마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힘든 일상에 위로가 될 수 있다. 내가 다른 이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내가 무언가를 내놓아서 없어졌다는 상실감보다는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시작할 수 있는 호의나 기부에 대해 생각보다는 우선 하나라도 시작해보려 한다. 이웃에게서 받은 따뜻한 백설기가 참 힘이 세다.

독자여론팀장 jador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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